어느 날 미처 완성되지 못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입속에서 벌리면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대기 중일 때가 있다. 무언가를 마구 써야만 될 것 같은 절박한 시간을 아무것도 못하고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오랜 시간 되풀이하게 되면서, 난 내가 글쓰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는걸 잊고 지내온 거같다.
이기주 작가 언어의 온도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썼던 글을 온도는 얼마나 될까를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불현듯 갑자기 무언가 쓰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좀 따스하고, 좀더 포근한 느낌이 드는 글로~
이제라도 대기중인 내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보기로했다.
언어의 온도에서 찾아낸 내 마음을 팔딱이게 했던 문장들을 적어본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사랑 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은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류시화 시인의 나무의 시에 나오는 짤막한 구절-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 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본질은 다른 것과 잘 섞이지 않는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엉뚱한 방식으로 드러나곤 한다.
정확히 스물 다섯살까지 내가 공개석상에서 책이나 글을 읽게 되었을 때 늘 듣던 말이 있다. 너 꼭 웃으면서 읽는 것 같아~~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여러번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굉장히 따스한 온도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런데 삼십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내게 아나운서처럼 지적이고 차분한 목소리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더불어 그 목소리와 분위기때문에 쉽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들 했다.
그것도 칭찬일까 했지만, 어느 순간 내가 내 목소리에서 따스한 온도와 행복한 웃음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늦은 시각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첫마디로 '오늘 내 말의 온도는 몇 도인 것 같아?'라고 물어왔다. '언어의 온도'를 읽으며 카톡 프로필에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라고 쓴 것을 본 모양이다. 술 한 잔 마신듯 가라앉은 목소리였기에 한 10도쯤...했더니 1도란다.ㅎ
나는 몇 도일까,
삶이 힘들고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내 말의 온도를 너무 낮추었다는 후회가 든다. 이제라도 다시 따스함을 되찾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