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의 [대설주의보]
90년대, 학부시절, [은어낚시통신]으로 문단에 새바람을 몰고 왔던 윤대녕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우리는 [은어낚시통신]을 가지고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만 해도 공지영의 [고등어],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의 소설과 시집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제법 많이 읽혀졌던 시기였다.
[은어낚시통신]이 이전의 소설들과 다름을 뽐내고, 여러 상징적 요소들로 다양한 해석을 요구했던 그 때, 내게 윤대녕은 해석하기 참으로 어려운 작가였다. 내게 기억되는 윤대녕은 상징으로 대표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슷하다...정도?
실제로 공식석상에 선 작가 윤대녕을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본 소감은, 참 예의바르고 반듯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반듯한 겉모습 속에 담겨진 그의 무구한 상상력의 끝은 어딜까...그 호기심에 그의 단편집인 [대설주의보]를 읽게 되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대설주의보]의 해설에서 이런 평을 썼다.
"...이는 무엇보다도, 미지의 여인과의 한 번의 정사로 '저 쪽 세계'로 건너갈 수도 있으리라는 식의 믿음을 가졌던 삼십대 초반의 청년 작가가 이제 앞으로의 삶에서 결정적인 변화는 더이상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십대 후반의 중견작가가 되면서 가능해진 일이겠거니와, 소위 90년대에 출발한 문학이 2000년대에 걸어갈 만한 가장 품위있는 길 중의 하나가 어쩌면 이 어름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더 성숙해진 표정과 보폭으로 윤대녕의 소설은 2000년대 후반을 걸어왔다. ..."
[대설주의보]에는 일곱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그 중 대부분이 강원도에서 썼거나 강원도와 관련이 있다고 작가가 말했듯이 작품의 곳곳에 강원도의 지명들이 등장한다. 또한 [대설주의보]의 단편들은 작가의 일상을 반영한 듯 편안하다. 물론 사십대 후반의 생이 담고 있는 삶의 고단함과 그 맘 때부터 겪을 수 있는 지인들의 불행한 면면들이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전체적인 흐름이 유쾌 발랄하진 않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다.
지나온 삶에 대해서...그리고 앞으로 닥칠 삶에 대해서...
물론 답은 없다.
표제작이었던 [대설주의보]에서도 쉽게 풀 수 있었던 인연의 고리는 십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고도 폭설앞에 또한번의 시험을 거치는 것을 보면, 삶이란 결코 쉬이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며 나이를 먹어가고 또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사는게 모두 어리석고 잔인한 속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작품 속에서 작가가 말하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하며 속고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
결코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는 작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만나서 헤어지는 순간부터 다시 그리워진다고...또한 중요한 것은 그때 그들도 나를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뒤가 없이는 앞도 없다.
과거를 깨끗이 지우고 남은 생이 투명하게 맑을 수 있을까?
[대설주의보]라고 하니 관련되는 문정희의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문득 떠오른다.
한겨울 못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었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였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생의 깊이만큼 푹푹 빠지는 눈밭을 밟아봐야 티없이 푸른 날이 더 반갑지 않을까...
상징성보다 인생의 진정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 윤대녕의 [대설주의보]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의 과제를 남겼다. 이제 서서히 그것을 풀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