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야? 알았어. 내가 그리로 갈게.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신경숙

by 변미용
왜 그때 그러지 못했나, 싶은 일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아, 그때!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던 자책들.
그 일과는 상관없는 상황에 갑자기 헤아리게 된 그때의 마음들,
앞으로 다가오는 어떤 또다른 시간 앞에서도 이해가 불가능하거나 의문으로 남을 일들.

"어디야?"

"알았어. 내가 그리로 갈게."


누구나 다 성장통을 겪는다.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감기처럼 가벼운 열병일 수도 있다.

나이 마흔하고도 넷을 지나고 있는 나의 성장통은 어땠을까? 파릇한 스무살 시절에는 얼른 서른이 넘어 안정된 생활을 했으면...하고 바랬다. 그때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늘 내리던 집근처 버스정류장처럼 안도와 편안함을 줄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서른이 넘고 마흔을 지나 쉰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성장통을 앓고 있다.

신경숙의 책 속에 인용되는 크리스토프 이야기처럼 '나는 크리스토프일까? 아니면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일까?'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도전받는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이 성장통을 잘 이겨낼 수 있겠지?

신경숙의 소설은 여전히 감각적이다.

이러니저러니 문학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그녀지만(그렇다면 누구보다 그녀가 성장통의 중심에 있다 하겠다.) 그녀의 작품속에 그려지는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는 인정하고 지나가려한다.

이십대에 그녀의 소설을 처음 대했을 때엔, 어쩌면 저리도 부드럽고 아름답게 표현했을까...하며 부러워했다. 간혹 날카롭거나 분명하지 않은 그녀의 소설이 가져온 성공을 강한 문체를 표현하며 등장했던 여성작가들을 밟고, 남성우월주의 세상에서 이런 류의 부드러움만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켜주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난 신경숙의 소설이 내마음을 고스란히 읽어내는 것 같아 좋았다.

이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엔...그녀의 소설속에 조금씩 배어있던 우울과 상실들이 소설 전체에 깊이 배어있다.

80년대라는 시대가 주는 상실감과, 그 시대를 살아야했던 네 젊은이들의 성장통은 작품을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을 아리게 했다. 저절로 어깨가 쳐졌다.

조금 더 밝은 톤으로 그들의 모습을 그리면 안되었을까?

어쩐지 주인공 윤의 모습에서 예전에 책표지나 잡지에서 보았던 밝지 않았던 작가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때론 내 모습도 겹쳐졌다. 더 우울했다.

한때 일본의 작가들이 젊은이들의 방황과 성장통을 소설의 소재로 삼았던 적이 있다.

신경숙은 한국인의 언어와 문체로 그것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사랑의 기쁨만큼이나 상실의 아픔을 통과하며 세상을 향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젊은 청춘들을 향한 나의 이 발신음이 어디에 이를지는 모를 일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울한 사회풍경과 시간을 뚫고 나아가서 서로에게 어떻게 불멸의 풍경으로 각인되는지...를 따라가 보았다. (중략) 이 소설에서 어쩌든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

신경숙은 여전히 자신만의 색깔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나마 사랑으로 슬픔과 아픔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일까?

작품 속에서 윤과 명서가 전화로 나누었던 대화의 대부분인 "어디야?"/"알았어...내가 그리로 갈게."가 내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알았어...내가 그리로 갈게."에 담겨있는 명서의 사랑과 두사람의 깊은 유대 관계가 은근히 부러워서일까?

전화벨소리만 들어도 그사람이 누구인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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