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곡성'과 '종의 기원'을 함께 논하다.

by 변미용

눈을 떠보니 스마트폰 시계가 새벽 4시 34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안도했다.

요며칠 계속되는 악몽의 절정처럼 무섭고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던 악몽에서 헤어나왔다는 것에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았다.

며칠째 계속되는 악몽들이 내 앞날의 불길함의 전조는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아직 어두운 새벽임에도 잠못들게했다.


그저 심리스릴러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러 간 영화 [곡성]은 보는 내내 어둡고 음산한 속에 피범벅의 모습들이 숨을 죽이게 했다.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고 빠져들어 보긴 했으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 어, 이게 뭐야? 그냥 이게 끝이야?"하는 어리둥절한 마음이 들었다. 도무지 어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인터넷의 영화 감상평들을 여러 편 살펴보았더니, 각자의 해석도 분분하고 결말에 대한 의견도 각기 다르게 표현될 정도로 영화는 상징성이 강했다. [곡성]의 상징성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분석을 자세히 해준 블로거의 글 덕분에 어느 정도 영화가 머릿속에 자리잡기는 했지만, [곡성]을 떠올리면 여전히 무언가 스산한 느낌이 든다.


우연일까 아님 억지일까

[곡성]을 본 다음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정유정의 신작 장편소설 [종의 기원]이 도착했다. 정유정의 소설들은 [내인생의 스프링캠프]를 제외하곤 대부분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그리고 있어서 좀 무겁게 와닿는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그 결정판이었다. 정유정 작가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악'에 대해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평범한 비둘기라고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에 이를 똑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그린 '유진'이라는 인물이 미미하나마 어떤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고 한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있다."-프로이트


인류의 2~3퍼센트는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그 중의 상위 1퍼센트를 정신의학자들은 '프레데터(순수 악인)'이라고 부른다 한다. [종의 기원]은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즐기라 했지만, [종의 기원]을 읽는 내내 즐겁지 않았다. 작가의 작품 구성과 심리 묘사, 그리고 치밀한 사건 전개에 감탄을 마지 않았지만, 그러했기에 마치 지독한 신문 기사를 접한 듯한 침울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유진'이 발작 직전에 환각 속에서 맡았던 피비린내가 주변을 감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뒤를 돌아본다. 포식자인 '유진'이 피비린내 속에서 겁먹은 여자를 타겟으로 삼는 것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의 '유진'은 프레데터이다. 그렇다면 [곡성]의 '외지인'과 '일광'은 악령일까 프레데터일까?


어젯밤 악몽은 내가 저지른 잘못(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때문에, 경찰이 나를 찾을까 전전긍긍하고 불안해하던 시간들이 이어졌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격한 안타까움이 깜짝깜짝 놀람으로 나타나고, 이런 일이 없는 시절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무섭고, 슬프고, 고통스런 시간들이었다. 어쩌다 눈을 떴지만, 안도감은 잠깐...쉽게 잠을 다시 청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며 굳이 위안을 삼자면, 아마도 [곡성]과 연이어 읽은 [종의 기원]이 '악몽'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라는...

아무튼 그러고보면 나는 사이코패스는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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