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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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권 결제창을 열었다. 그리고는 홀린 듯이 티켓을 발권해버렸다. 일주일째 밤을 새워서 작업한 탓에 정신이 나갔었던 게 분명했다. 뒤는 생각도 안 하고 항공권 결제라니.
어느 새벽, 책상 한 편에 놓인 다이어리를 피고는 혼미한 정신으로 남아있는 작업과 일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마무리할 수 있을 듯했다.
‘매일 이만큼씩 작업하면 빠르면 이 날짜면 될 것 같네.’
순간 9월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작업 마감은 이쯤이면 되니까 여유롭게 일주일 정도 뒤면 되지 않을까.’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한 달 살기 하고 싶은 도시'를 훑어보았다. 런던, 파리, 포르투, 스톡홀름, 암스테르담, 두브로브니크, 바르샤바, 비엔나. 9월이라, 9월이면 런던이지. 그리고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런던으로 가는 제일 저렴한 경유 항공권을 덜컥 결제해버렸다.
평소와 같이 밤을 지새우는 날이 이어졌지만 분명히 무언가 달랐다. 여행은 6개월도 더 남게 남았는데 달콤한 당근은 에너지 드링크보다 효과가 좋은 듯했다. 당근 덕분일까 예정보다 빠른 일정에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의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머물고 싶은 만큼 여행하고 돌아오라고 말해주었지만 문제는 털북숭이 토끼 밤이였다. 화장실까지 졸졸 쫓아다니는 우리 토끼가 걱정되었다. 새벽 한 시쯤, 신나게 우다다하는 밤이에게 말린 당근을 하나 주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밤이야. 두 달 동안 아빠랑 잘 지낼 수 있지?”
“….”
하얀 양말을 신은 조막만 한 앞 발을 살포시 내 무릎에 얹었다. 잘 지낼 테니 걱정 말라는 긍정의 의미이면 좋겠지만 밤이의 성격으로 보건대 그 뜻은 분명 ‘당근 더 줄래?’였다.
이젠 정말 여행을 하고 싶어.
여행을 할 수 없으니 회상이라도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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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한 달 살기,
사실은 두 달 살기를 한 소소한 에피소드와
런던 여행지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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