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한 달 살기
D+2
뾰로롱뾰롱.
새들이 수다 떠는소리가 들렸다.
나무 창문을 들어 올리니 아직 밖은 어두웠다. 시차 적응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시차 적응을 하겠다며 해가 뜰 때까지 미드를 보곤 했는데 어째 아무 소용이 없던 모양이다. 비행의 피로에 숙소를 찾으며 비까지 흠뻑 맞은 탓에 몸은 젖은 수건처럼 무거웠지만 정신은 말똥 했다.
한 뼘 정도 열린 창문 사이로 개운하면서도 낯선 공기가 들어왔다.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게 음악을 틀어두고 어제 미처 하지 못했던 짐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핑크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제 나가자’
거리에는 제법 사람들이 보였다. 버스 정류장 앞을 지나려는데 이층 버스가 내 앞에 멈추었는데, 아무래도 스트레칭한다고 퍼덕거리는 내 손짓이 멈춰달라는 듯했나 보다. 어차피 잘 되었다며 태연하게 버스를 타고 계단을 올라 이층 맨 앞자리, 일명 특등석에 앉았다.
버스는 좁디좁은 도로를 유연하게 빠져나갔고, 큰길에서 다른 이층 버스의 꼬리를 물기도 했다. 맨 앞에서 점점 밝아지는 런던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길로 접어들었다.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는 길로.
20살. 런던에서 일주일에 다섯 번 어학원을 갔고 집에 돌아와 공부를 했다. 매일 장을 보러 동네 마트를 다녔고, 이삼일에 한 번은 한국인 룸메이트들과 한식 파티를 했다. 주말 오후에는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가끔은 여행 책 속에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답답할 때면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트라팔가 광장을 찾곤 했다. 내셔널 갤러리를 등지고 계단에 앉아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나도 여행자가 된 것 같아 설레었더랬다. 그런 영국 생활이 누군가에겐 로맨틱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난 생각만큼 즐겁지는 않았다. 매일이 생존을 위한 삶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아 매일 불안하고 외로웠다.
여행자이고 싶었던 건 끝이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낯선 여행 끝엔 언제나 안락하고 익숙한 집이 있으니까.
트라팔가 광장 앞에서 내려 익숙하게 한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바라던 여행자가 되어 돌아온 곳, 그때만큼 젊고 파릇하진 않지만 그때보다는 조금 더 성숙해졌을까,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까 싶어 계단에 앉아 첫날 공항에서부터 쪼그라든 가슴을 애써 펴내 보려 했다.
이젠 정말 여행을 하고 싶어.
여행을 할 수 없으니 회상이라도 할게.
,
런던에서 한 달 살기,
사실은 두 달 살기를 한 소소한 에피소드와
런던 여행지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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