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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Dec 16. 2019

나는 이야기가 되고 싶다

글쓰면서 달라진 것들

내가 부르는 나의 노래   


내 속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것들이 있다. 내 속에 있지만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 어떤 형체인지 나도 잘 모른다. 그것들을 꺼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차례대로 가지런히 꺼내어 늘어놓고 조곤조곤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다. 때로는 되는대로 꺼내 흩어버리고 싶다. 저녁노을 퍼져가는 흐린 바람에게 맡겨 그것들을 날려 보내면 나는 홀가분할 것이다. 그러고나선 나직하지만 연필 쥔 손으로 그 이야기를 쓴다. 사람들은 그 글씨가 너무 희미하여 알아보지 못한다. 그 흐릿한 악보가 부끄러워서 나는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목소리를 조금 높여본다. 그것은 내가 되어간다.    



글쓰면서 달라진 것들


글쓰기 교실에 다닌 지 1년이 되었다. 처음 썼던 글을 읽어보았다. 비유와 은유를 넘치게 써서 나를 포장한 글은 좀 창피하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노력하긴 했는데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세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때로 어느 순간에 이런 건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었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기억도 희미해지고 만다.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얄팍한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린다. 1 년 여 동안 대전 시민대학 평생교육원의 <행복한 글쓰기>에 다니면서 써온 글이 30 여 편 이나 쌓였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나의 시선과 생각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쓰다 보니 자세히 보게 되었다. 글을 쓰려고 하는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다가 대상의 모습과 성격을 알게 되었다. 관찰하다 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니 쓰기가 쉬웠다. 내가 알아가는 세계를 묘사하고 생각하면서 나의 세계는 확실히 넓어졌고 풍성해졌다.  

   


싫어하는 것을 마음놓고 실컷 싫어하는 일


글쓰기 시간마다 숙제가 있는데 몇 주 전의 글쓰기 주제는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쓰기였다. 숙제를 하기는 했지만 내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찾기가 어려웠다. 싫어하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싫어하는 게 무척 많은 사람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기 싫어서 이불속에서 한참을 미적거리고, 아침마다 머리 감는 건 어찌나 귀찮고 싫은지 모자 쓰고 나갈까 궁리한다. 나는 사실은 내가 아는 사람을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침마다 앞집 아저씨가 층계참으로 커피를 들고 나와서 마시는데 좁은 계단을 지날 때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신경 쓸 때 그 순간이 싫다. 웃으며 인사하는데 멀뚱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싫고, 길에서 담배연기를 흩뿌리고 가는 사람도 싫고, 자기 주장만 늘어놓고 다른 사람의 기분 따위는 염두에도 없는 사람이 싫다. ‘싫어하는 것’에 대하여 쓰라면 길지만 이런 걸 쓰기가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얼렁뚱땅 내가 싫어하는 청소에 대한 글을 써갔다. 다른 선생님들의 ‘싫어하는 것’에 대한 글을 같이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는 것이 제각기 있어서 재미있었다. 수강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싫어하는 것을 마음 놓고 실컷 싫어해도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한 존재인 나라는 사람이 싫어하는 게 많은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늘 나는 ‘긍정적이어야해.’, ‘인생을 낙천적으로 살아야해.’, ‘좋은 것만 생각해.’,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은 버려.’ 이렇게 나의 목소리를 눌러왔던 것은 아닐까. 내가 싫은 것을 싫다고 하는 것, 그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지 알게 되는 것이고, 내게 필요한 감정이다. 부정적인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글쓰기였다.  


나는 이야기가 되고 싶다    


얼마 전 글 쓰는 사람들의 플랫폼인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는데 승인이 났다. 글을 써도 된다는 승인을 받고나서 무척 기뻤다. 브런치 이름은 나의 자연이름인 부엉이숲으로 했다. 프로필을 쓰는 손이 떨렸다.

   

솟대에 앉은 부엉이가 자연책을 읽어줍니다. 새는 하늘과 땅을 오갑니다. 하늘과 세상을 이어주는 부엉이 숲에 귀 기울입니다.   

 

처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처럼 설레고 처음 가지 끝을 떠난 어린 새처럼 두렵다. 하지만 기대한다. 처음이 모여서 이야기가 된다. 그 처음들을 채우려고 한다. 작가라는 먼 말 말고 나는 이야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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