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혼자였다. 작은 슬레이트 집들이 마을 한가운데 파릇한 논을 빙 둘러 모여 있었고 나는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노은동 산 5번지에 살았다. 동네아이들은 마을 공터나 골목에서 모여 놀았다. 마을 아이들과 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학교도 멀어서 4키로 거리를 국민학교 때부터 걸어 다녔다. 그때는 외로움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학교를 마치고 들판을 가로질러 집에 오는 데 우박이 내렸다. 넓은 밭둑길 한가운데에서 나는 우산도 없었고 피할 곳도 없었다. 우박이 거세게 휘몰아치며 어린 나를 때렸다. 얼굴이며 소매 없는 맨팔 위로 차갑고 딱딱한 유리알 같은 우박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매질을 해댔다. 나는 너무 아파서 울면서 집에 왔다. 그때의 외로움은 고통으로 기억되었고, 커갈수록 나는 그 외로움에 익숙해져갔다.
쉬는 날엔 자전거를 자주 탄다.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갑천 길에 들어서면 갈대숲 옆으로 흐르는 강물이 천천히 흘러가는 소리에 기분이 저절로 상쾌해진다. 가수원 방향으로 페달을 밟는다. 뚝방에 왕버드나무 가지가 하늘을 둥글게 떠받치고 있다. 뾰족한 손톱 잎이 가지 끝에 살짝 나온 것이 제법 푸른 기운이 난다. 이제부터 흙길이 나온다. 강가에는 버드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버들가지는 낭창낭창 늘어져 내 옆을 휙휙 지나간다. 생명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나뭇가지들이 빛난다.
빛나는 것들은 청년기였던 내 옆을 스쳐 지나갔었다. 혼자는 나의 친구처럼 나에게 따라붙었지만 나는 늘 혼자를 따돌리려 했다. 그러나 혼자에 익숙했던 나는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했다. 혼자 있어도 외롭고 사람들에 둘러싸여있을 때면 더 외로웠다. 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 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들은 빛에 둘러싸여있었고 빛은 내게 머무르지 못했다. 그리고 두려움과 좌절, 포기와 슬픔은 어둠속에 잠복해 있다가 튀어나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낮게 깔린 회색 하늘이 내게로 왔다.
산다는 것은 놀랍게 외로운 일이다. 나는 외로움이란 스승에게 시간을 지불하며 오랫동안 답을 구해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일이 나를 나답게 할까? 나의 스승은 즉문즉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행자승으로 살아온 10년간 물을 길어 나르고, 10년은 잔솔가지를 모으고, 10년간 불을 지피고, 10년은 마당을 쓸고, 10년은 행낭을 꾸려왔다. 스승은 가르치지 않았지만 나는 길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벌써 여정의 반 넘어 온 지금 답을 찾다니 외로움이란 스승은 참 혹독하다.
멀고 먼 길을 돌아 여기에 이르러서야 나를 책망하지 않게 되었다. 그 옛날 답을 찾았으면 어땠을까? 그 답은 분명하고 명쾌한 만큼 가벼워서 나에게 머물지 않고 날아갔을지 모른다. 숨차게 페달을 밟는다. 언덕길을 오르며 어느 곳이 움푹 패었는지, 돌이 튀어나온 곳에서 엉덩이를 살짝 들어야 하는 것을 안다. 봄바람이 쓰러진 고목 위에 햇살을 내려놓은 모습이 참 평화롭다. 바퀴에 닿는 부드럽고 축축한 흙길이 숲 저쪽으로 빙 둘러 모습을 감추고 있다.
갈대숲은 끊길 듯 이어지는 길을 감추어놓았다. 미끄러지듯 두 개의 바퀴가 길 위를 달린다. 낮은 곳에서 꽃다지 노란 꽃잎이 봄바람을 피해 달아난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너른 들판에 풀들이 눕는다. 바람은 순식간에 풀잎들을 일으켜 초록 바다를 만들어 내 발길을 가로막는다.
외로움은 나를 이끌어왔다. 나를 만나게 했다. 나의 두려움에 맞서게 했고 나의 눈물과 슬픔으로 깊어진 강을 건너게 했다. 내 마음이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있을 때에도 나의 두 다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외로움을 기르는 방법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길 위에서 움직이며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도 외로움을 만나는 이 길이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