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관심의 세계를 넓힐수록
짝 맞춘 양말을 칸칸이 넣어두었던 서랍
나도 한 때는 주부의 사명을 걸고 집안에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져 있지 않도록 청결을 유지한 적이 있었다. 가구의 귀퉁이에 쌓인 먼지 한 톨도 허용하지 않았고 현관 구석에 떨어진 모래 한 알도 지나치지 않고 청소기로 싹싹 빨아들였다. 정기적으로 스팀 청소를 해서 바닥이 뽀득뽀득했다. 아이들 책꽂이에 모아둔 피겨 인형들을 퐁퐁을 푼 바가지에 넣고 흔들어 헹궈서 베란다 햇볕에 말리고 다시 책꽂이에 줄 맞춰 놓는 일을 자주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작아진 옷들을 미루지 않고 정리했다. 짝 맞춘 양말이 칸칸이 들어간 서랍, 깃을 살려 갠 폴로셔츠가 적당한 간격으로 맞춰져 있는 옷장이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일이었다. 값나가는 가구는 없어도 쓸고 닦고 정돈한 집은 내 자랑이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안을 어지르지 못하게 관리하고 단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꾸준하고 성실하게 저지레를 해놓았으므로 나는 계속 주부로서의 사명감을 다지며 우리 집의 청결을 유지했다.
지금은 그저 청소기만 한번 돌리고 설거지나 겨우 하고 빨래는 건조대에서 며칠간 걸려 있다가 옷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직접 걷어다가 입기도 한다. 그런데도 남편과 아이들은 불평이 없다. 불평은 내가 한다. “아이고, 지저분해라, 청소해야 하는데, 이거 치워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고 입버릇처럼 말은 하지만 시간이 있어도 이젠 안 한다. 그 시간에 쉬고 놀고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신기하게도 집안일이 별로 눈에 안 걸린다. 지난달 큰아들의 생일에 아들의 여자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전날 정리와 청소에 하루를 모두 들여서 집을 깨끗이 해놓고 개운했었지만 며칠 만에 우리 집은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갔고 우리 식구들은 조금 지저분해진 집이 오히려 편안했다.
내가 만들었던 자연 베란다 정원
청소 이외에 내가 심혈을 기울여 좋아했던 일이 또 있다. 베란다 화단 가꾸기이다. 이사하고 나서 친구가 집들이 선물로 랜디 화분을 가져왔었다. 목질화 된 밑동에서 무성하게 늘어진 초록 마디마다 진한 분홍색 자잘한 꽃들이 솜사탕처럼 뭉게뭉게 피어있는 말도 안 되게 예쁜 화분이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나는 베란다 프로젝트에 정성을 들였다. 봄가을에 계절이 바뀔 때면 하우스농장 문턱이 닳도록 야생화를 사 왔다. 마사와 상토도 포대 채 사놓고 반나절을 베란다에 앉아 흙손을 하면서 분갈이를 했다. 화분을 씻어서 햇볕 드는 화분대에 올려놓았다,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배치를 했다. 겨울에 동쪽에 들은 햇볕이 노루 꼬랑지만큼 들어왔다가 서쪽으로 기울면 토끼 꼬랑지처럼 짧아지는 게 너무도 아쉬웠었다. 그러다가 2월이 다 지나갈 때쯤 아직 바람이 찬데도 빈 가지 끝에서 한 방울만큼의 새순이 나오면 내 마음도 벅차올랐다. 이렇게 지나간 일을 쓰고 보니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가 내가 사랑했던 정원에게 미안하다. 그렇다. 그렇게 공들였던 베란다 정원을 이젠 안 한다. 정원을 못하게 될 만큼 집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시간을 쪼개 화분을 가꾸기에는 체력이 따라오지를 못했다.
내가 변한 이유
집에서 공부방 일을 하던 때에는 일하는 틈틈이 집안일도 화단 가꾸기도 정성껏 열심을 다했었다. 이제는 집안 청소도 그저 전염병 안 걸릴 만큼만 대충 하고 눈감고 넘어간다. 집안 어지른다고 아이들 단속하고 남편에게 잔소리하면서 열심히 살림했던 옛날의 나에겐 어림없는 소리이지만 내가 좀 많이 변했다. 정원 가꾸기는 내가 안 돌봐도 아름답고 예쁜 화단을 지구라는 커다란 화분이 한시도 쉬지 않고 관리한다. 자연의 생명력은 최선을 다할 뿐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자연이 돌보는 숲에서 일하고 있다. 숲은 청소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데도 지저분하지 않아 오히려 편안하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변한 걸 보면 나도 나를 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변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재미와 관심의 세계를 넓힐수록 행복의 기회는 많아질 것이다. 나의 시간을 더 재미있고 넓은 세계로 늘려가고 싶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가 될 테지만 나의 변주곡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