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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Dec 26. 2019

어쩌면 둠벙논은 아직도 샘솟고 있을지도 몰라


비탈밭

마을은 논을 빙 둘러싸고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한 참 떨어진 산 아래에 외따로 자리했다. 신록이 짙어지는 6월이면 배나무 가지에 가려 슬라브 단층집은 숨어버렸고 옥상에 널어 논 빨래들만 울긋불긋 펄럭였다. 집 왼쪽으로는 배 밭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복숭아밭이 있었다. 복숭아나무는 잘 익은 복숭아 못지않게 달콤한 수액이 흐르는 나무여서 수명이 오래가지 않았다. 갈라진 틈의 나무진을 찾아든 벌레들과 병해에 시달리다가 죽는 나무를 베어내고 대신할 묘목이 필요했다. 복숭아과수원 너머 비탈진 밭은 묘목을 심어 기르는 곳이었다. 키 작은 나무가 듬성듬성 심어진 비탈진 밭은 겨울이 되면 우리 4남매의 눈썰매 놀이터가 되었다. 12월만 되면 눈이 많이도 내렸었고 우리는 하루 종일 비료포대를 탄 엉덩이가 푹 젖어도 추운 줄 모르고 눈썰매에 빠져 놀았다.

     

비탈밭을 경계로 오씨 아저씨네 포도밭이 있었다. 나는 가끔 가시덩굴이 무성한 산딸기 수풀을 헤치고 포도밭으로 들어가 꿀이 뚝뚝 떨어지는 포도를 우리 집 것인 양 따먹었다. 오씨 아저씨네 포도밭은 지름길이기도 했다. 길도 없는 포도밭을 가로지르면 근방에 유일한 가게가 있는 마을회관으로 빨리 갈 수가 있었다. 보름달 빵을 얻어먹을 수 있는 막걸리 심부름을 갈 때면 주전자를 달랑거리며 망설이지 않고 포도밭을 지나다녔다.  

       

둠벙논

포도밭을 지나면 운동장 반 만 한 넓이의 논이 있었다. 그 논에는 왕가산 쪽으로 둠벙이 있었는데 한겨울에도 뽀얀 김을 모락모락 내면서 물을 뿜어냈다. 샘솟는 물이 있으니 나가는 구멍만 막아놓으면 넓은 논은 하루 밤 만에 얼어붙었다. 마을의 남자아이들은 빈 논의 물꼬를 막고 물을 채워 얼음판을 만들었다. 둠벙논 아저씨는 농사 망친다면서 야단치시긴 해도 나중엔 그냥 허허 웃으며 못 본체 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사내아이들은 식전 댓바람부터 대나무 빗자루를 어깨에 걸머메고 얼음판에 모였다. 아이들은 간밤에 쌓인 눈을 기세 좋게  쓸었다. 왼쪽으로 싹싹 오른쪽으로 싹싹 정성껏 잘 빗은 할머니 가르마처럼 비질을 하면 어른들은 ‘우리 집 마당도 그렇게 쓸어봐라.’ 하고 핀잔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철부지들이었는데도 아이들은 썰매를 직접 만들어 썼다. 대개 송판에 철사를 엉성하게 묶어서 만든 썰매였다. 가끔 어디서 구했는지 칼날을 양쪽에 대고 만든 고급 썰매를 만들어 오는 아이도 있어서 온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스케이트

칼날 썰매 못지않은 부러움의 대상은 스케이트였다. 목장집 삼형제들은 반질거리는 까만 구두에 예리하게 반짝거리는 칼날이 달린 스케이트를 신고 윗몸을 굽히고 팔을 휘두르며 얼음판을 누볐다. 엄마는 아들들이 목장 집 삼형제에게 기죽는 것을 싫어했다. 없는 살림에 엄마는 어디서 구했는지 중고 스케이트 구두를 두 켤레 구해왔다. 스케이트는 오빠와 남동생을 위한 것이었다. 딸들의 스케이트는 없었다. 엄마는 언니와 내가 집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말렸다. 딸들은 얌전히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틈만 나면 바깥으로 빠져나갔었지만 스케이트 차별에 화가 나서 내꺼도 사달라고 떼를 썼다. 고맙게도 남동생이 스케이트를 한번 신어보더니 땅 아래가 흔들린다고 겁을 내서 내가 스케이트를 갖게 되었다. 스케이트를 배운 적은 없지만 나는 그날부터 지극 정성으로 스케이트를 탔다. 목장 집 오빠들이 타는 걸 눈 여겨 보고 그대로 따라하면서 스케이트를 배웠다. 둥근 얼음판을 돌면서 발 바꿔 코너링하는 것을 익히려고 능숙하게 될 때까지 끝없이 돌고 돌았다.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도 몇 없었고 더구나 여자아이가 스케이트를 타는 건 내가 동네 유일이었다.

        

고무다리

얼음판 한가운데에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물이 솟아나오게 한 곳이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면 균열이 생긴 얼음이 출렁대서 그걸 고무다리라고 불렀었다. 사내아이들은 썰매에 서서 탄 채로 송곳으로 바닥을 치며 호기롭게 고무다리를 쌩쌩 지나쳤다. 고무다리는 위태롭게 출렁댔지만 탄성 좋은 고무줄처럼 다시 원래의 얼음판으로 돌아왔다. 스릴 넘치는 고무다리를 나도 건너고 싶었다. 소극적이고 겁 많은 여자아이가 마을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스케이트를 신으니 마법에 걸려 하루 종일 춤을 추는 빨간구두 소녀가 되려고 했다.    

나는 방금 고무다리를 건넌 현필이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하는 거야?”

“쉬워! 빨리 지나가면 되.”

옆에 있던 아이들이 나를 부추겼다.

“해봐.”

“무쟈게 재밌어.”

내 주변에는 어느 새 나를 응원하는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래, 해보는 거야. 이까짓 거 뭐!’ 저 멀리 놓여있는 고무다리에서 솟아 나온 물이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얼음에 스며들었다.

“크흡! 간다.”  


  

    

메기 잡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활주로를 달리듯 스케이트 칼날을 박차며 달려 나가 속력을 냈다. 출렁 다리 가까이에서 나는 발목을 나란히 십일자로 모으고 무릎을 굽혔다. 이제 이 스피드로 다리를 지나면 되는 거였다. 덜덜 떨리는 두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제 여기만 지나치면 되는데, 다리 한가운데가 출렁! 하면서 얼음장이 꺼졌다. 나는 그대로 찬 물에 쳐 박혔다. 얼음조각들이 허우적대는 내 팔 밑으로 흐트러진 퍼즐 처럼 밀려나갔다. 물에 빠졌다지만 논바닥이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논두렁으로 끌어내주었다. 아이들은 내가 빠진 걸 두고 ‘메기 잡았다.’면서 재밌어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메기 잡은 것이 자랑스러웠고 왠지 사내아이들의 세계에 어깨를 나란히 한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다.  


       

수정골

이제는 없어진 나의 고향 수정골은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꽃피는 산골이었다. 왕가산은 고향 마을을 기다란 팔로 감싸 안았다. 왕가산의 두 팔이 맞닿지 않아 빈틈이 생긴 쪽으로 난 작은 마을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나가야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 길을 걸어서 세상 밖으로 나간 빨간구두 소녀는 어느새 새치가 신경 쓰이는 나이가 되었다.  

  

발아래로 얼음장이 꺼지는 추억은 스릴이 있었으나,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얼음장의 경험들은 스릴도 자랑도 재미도 없었다. 논바닥같이 안전한 곳도 아니었다. 때로는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었지만 나 혼자 나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 앞에 설 때마다 오기가 둠벙논처럼 샘솟았다. 겨울이 유난히도 길었던 수정골의 둠벙논은 어쩌면 아직까지도 내게 마법을 걸어놓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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