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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숲 Feb 03. 2020

내가 무엇이 될까 하니

신년운수와 새해 계획


    

새해가 되어 1년 계획을 세웠다. 1월 1일이라고 해서 12월 31일과 다를 건 없다. 어제도 오늘과 비슷한 시간에 해가 떠서 24시간이 지났고 오늘이 되었다. 그런데도 1월 1일이 되면 새로이 살겠다는 각오가 불끈 솟아오른다. 새해 첫날이면 새삼스레 성실함을 다시 고쳐 맨다. 그 계획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자신 없는 일도 들어 있다.  

  

나의 새해 계획은 거의 작년에도 세웠던 항목들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지, 책 읽기와 글쓰기도 꾸준히 해야겠어. 일을 잘하고 싶어, ITQ 자격증. 산림 관련 자격증도 따고 싶어 등이다. 이런 계획은 내가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할 수 있는 계획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올해 안에 못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나에겐 내년이라는 차기 계획도 있으니까.    


보수는 적지만 지금 하는 일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과 행복함을 느낀다. 아침마다 피곤했던 몸이 다시 리셋된 기분으로 벌떡 일어나 일터로 가는 걸 보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단 생각이 들만큼 나의 일이 좋다. 문제는 이 일이 해마다 사업을 종료하고 다음 해에 사람을 새로 뽑는다는 것이다.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안되면 놀면서 하고 싶은 공부나 실컷 하면 되지!’ 하고 큰소리도 쳐보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든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최선을 다하지만 이것은 내가 마음을 굳게 먹어도 장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철학관에 가려고 작정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재미 삼아 보는 것 말고 점을 치러 가거나 믿어 본 적이 없다. 주차장에서 내 차 앞을 막고 가로로 주차된 자동차가 꼼짝도 하지 않는 데다가 연락처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상식 없는 운전자가 나타날 동안 천천히 산책이나 할 생각이었다. 지하상가를 어슬렁거리는데 그 철학관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나 한 번 들어가 볼까, 철학관 문을 여는 일이 뭐라고 심장이 벌렁댔다. 내 미래의 비밀이 밝혀질 것 같은 기분에 왠지 긴장까지 되었다.  

  

철학관 선생님의 인상은 자모회의 드센 언니 같았다.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 불려 간 교무실에서처럼 공손히 앉았다.

“30년 전에 관운이 틔었었네. 왜 그때 일을 그만뒀어?”

“아.. 그 때요. 아이 키우느라 그랬죠.”

“그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크게 됐을 건데. 아깝네.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왔다 갔다 불안하지.”

‘와, 진짜... 과거 일을 맞추는 걸 보니 놀라운데.’

‘아니야, 이런 건 그냥 던져봐서 어쩌다 맞추는 거 아닐까?’

난 마음이 복잡해졌다.

“3월에 들어오는 거 있어. 그거 잡아. 근데 5월에 더 큰 거 들어올 거야. 그거 놓치지 마.”

이 말에 내 마음이 훅 하고 쏠렸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3월부터 구직으로 바쁜 시기이지만 진짜 실속 있는 자리는 5월에 발표가 날 거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번엔 그냥 던진 말이 아닐 거 같아 자동 인사가 튀어나왔다. 그 뒤에도 이런저런 기분 좋은 이야기를 더 들었다.     


주차장의 매너 없는 자동차가 빠지지 않아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도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번 주에 이력서와 시나리오를 내고 시연 면접을 봤다. 나는 일을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기획하고 실제로 해보았던 프로그램은 빠짐없이 기록해왔다. 노트북에 들어있는 수많은 파일 중에서 내가 자신 있는 것을 정해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여러 번 수정하고 철저히 준비를 해서 면접을 봤다. 최선을 다했고 큰 실수도 하지 않았다.

    

그때 철학관에서 나쁜 말을 들었으면 어땠을까? 잠시 기분은 나쁘지만 ‘신년운세가 안 좋게 나왔는데 어차피 안 될 거야.’ 하고 상심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 마음이 가는 일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성격이다. 당연한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 어려운 일은 능력이 닿지 않아서 못하지만 당연한 일은 그때 그 순간 잘하려고 애쓴다. 무엇이 될까 보다 더 중요한 ‘나는 왜 이 일을 하려고 할까.’ ‘이 일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한다. 해마다 고개를 하나씩 넘는 것 같다. 그때마다 길은 오히려 희미해지지만 내가 질문하고 답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겨울눈을 준비한 가지는 고치에서 나온 벌레의 삶이 되어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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