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무가 맛있을 때라더니 선생님들의 도시락에 무 반찬이 많다. 깍두기, 총각김치, 섞박지, 무나물, 무생채 등 같은 재료인데 반찬마다 다른 맛이 난다. 통통한 달랑무를 무청잎사귀가 돌돌 감싸고 있다. 주황빛 붉은 김치물이 침샘을 자극하는데 한 입에 들어가기엔 어려워 보이는 크기에 젓가락이 주춤하는 사이 부엉이 선생님이 주방가위로 무청 사이를 싹둑 잘라준다. 김나는 밥 한 숟가락에 얹은 무를 아작아작 씹는다. 입안에서 여러 개의 폭죽이 팡파르를 터뜨리는 듯 침샘이 폭발한다. 씹을 때마다 사각거리는 무는 아직은 뒷맛이 맵싸하다. 나는 매운 맛이 없어지고 단맛이 생기기 시작한 무김치가 좋다. 어떤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인지 달달한 무맛이 숙성되어 갈 때 김치 통을 열면 김치 국이 고여 있는 곳에 뽀글거리는 기포가 생긴다. 무의 맵싸한 맛이 사라지는 때이다.
구내식당도 없고 주변 식당도 없는 곳에 근무하는 터라 아침마다 점심 도시락을 챙겨야 한다. 바쁜 출근시간에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식구들의 아침식사는 계란부침, 토스트, 우유, 선식, 토마토주스, 두유, 과일 중, 한두 가지를 간편하고 빠르게 해결하고 있기에 아침에 반찬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저녁밥을 하면서 만든 반찬을 다음날 점심 도시락으로 미리 챙겨놓는다. 그 덕분에 저녁 반찬이 좋아진다. 계란말이, 두부조림, 호박전, 가지나물, 오뎅볶음, 미역줄기 등 반찬가게 메뉴 같은 찬이 오른다. 해먹는다는 것은 내게 힘든 일이다. 피곤하다는 것, 바쁘다는 것, 쉬고 싶다는 것, 귀찮다는 것,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등의 온갖 이유가 집에 들어오면 생기니 참으로 해먹는 것의 어려움은 구구절절하다.
3월에 위탁업으로 이곳에 처음 근무할 때 점심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조금 했다. 부엉이선생님이
“전에는 직원들 근무 동에서 식대를 내고 먹을 수 있었대요.”
“우리도 그러면 좋겠네요.”
하지만 근무 동 뒤편에서 여사들이 담배를 뻑뻑 피우는 모습이 하도 쎄 보여서 이제나 저제나 말도 못 꺼냈다.
“차라리 없는 찬이라도 우리끼리 마음 편히 먹는 게 좋겠어요.”
하고 도시락을 챙겼다. 집에서 먹는 소박한 반찬 한두 가지라도 선생님들의 도시락을 열면 온갖 진미들이 펼쳐진다. 나만 솜씨가 없지 다른 분들은 한식조리사 자격증이라도 가진 건 아닌가 싶게 음식 맛이 좋다. 점심 도시락을 펼쳐놓고 같이 밥을 먹다보니 반찬에 신경이 쓰여 내 요리 실력이 조금은 나아진 것도 같다. 오후 수업이 없는 날은 차를 타고 나가 근처 맛 집에서 외식도 하는데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는 날은 괜히 마음도 몸도 편하다. 한가하게 식당 밥을 먹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천천히 걸어 사무실로 들어간다. 생선뼈처럼 가지런한 메타이파리가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비처럼 내려온다. 선생님들의 머리위로 헐렁한 생선뼈가 올라타 머리삔인 것처럼 시침을 뗀다. 같이 밥을 오래 먹으니 한 식구가 되었다. 내가 만든 반찬이 맛없을 텐데도 선생님들은 맛있다고 골고루 먹어준다. 한 솥밥 먹는 생활을 한지 아홉 달이 되어간다. 아홉은 완성의 수라고 했는데 이제 근무계약이 종료되어 겨울방학이 다가온다. 가로수길이 쓸쓸하다.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에 모락모락 김을 내는 호떡집이 있다. 배불러 죽겠다던 선생님들이 호떡집을 그냥 지나치기는 또 어려운 일이다. 의리를 저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배불러죽음을 무릅쓰고 호떡 한 개, 오뎅 꼬치도 한 개 먹는다. 오후 산책은 숲길을 크게 한 바퀴 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