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금요일 오후이다. 2층짜리 작은 학습원과 운동장을 하루에 이만 보씩이나 걷는 날들이 이어진 일주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교육을 받고 친구들과 잘 놀고 잘 지내다가, 버스 유리창 너머로 손을 흔들며 교육원을 떠났다. 일주일 교육을 마감하는 보고서까지 마치면 비로소 한숨 돌리며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진다. 금요일 오후 5시는 꿀처럼 나른하게 찻잔 속에서 풀어진다.
“오늘 밤 시간 되시는 분? 무수동 별 밤 프로그램 같이 가요.”
“오, 별 보러? 좋아요!”
숲 샘 단체 톡에서 알림이 왔다. 조금 전까지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별’ 이라는 말에 손가락이 먼저 불쑥 메시지를 전송했다. 도시의 밤하늘에서 별을 보기는 어렵다. 가로등과 상가의 불빛, 도로 위를 가득 채운 끊이지 않는 헤드라이트가 별빛을 가려 도시의 밤하늘은 반짝거림을 잃은 지 오래다.
무수동은 여기가 대전시인가 싶을 정도로 깊은 산골에 있는 동네이다. 없을 무(無). 시름 수(愁).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뜻이다. 일주일간 나를 눌렀던 업무 스트레스는 이곳에서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는 개울을 따라 울창한 잡목림이 들어선 깊은 산골짜기에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렇게 맑은 동네에서 살면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질 것 같다. 미리 와 있는 친구들과 차담을 나누고 인솔자를 따라 밤 산책을 나선다, 긴 하루는 해가 졌어도 옅은 노을빛을 숲의 우듬지 위로 펼쳐놓았다. 노을 진 서쪽 산길로 들어서면 우람한 줄기를 쭉쭉 뻗어 나뭇가지를 지붕처럼 펼친 우뚝한 활엽수들을 만날 수 있다. 산책길을 크게 돌아 숲에 들어갈수록 노을은 옅어지고 어둠이 진해진다. 어두운 상수리나무 바로 앞에서 ‘소쩍다 소쩍다’ 소쩍새 소리가 들리고 ‘쌕쌔색 쌕새색’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고향 마을에 온 듯 정겹다. 쪼로록 흘렀던 목덜미의 땀을 서늘한 밤바람이 식혀준다. 앞서 걷는 선생님이 오솔길에 늘어진 팽나무 가지를 손으로 치우면서 ‘어멋!’ 하고 낮은 감탄을 한다.
“응? 왜 그래요?”
“여기 나뭇잎이 움직여요.”
“어디 어디? 나뭇잎이 어떻게 움직여?”
“아이, 애벌레잖아.”
“하하 홍점알락나비 애벌레네, 꼭 나뭇잎같이 생겼어. 깜빡 속았네.”
팽나무 거친 이파리 위에서 꼼지락 기어가던 애벌레는 사람들에게 들켜서 놀랐는지 사슴뿔처럼 곁가지가 돋은 더듬이를 쫑긋 세우고 온몸에 난 짧고 센 돌기를 곧추 세우고 멈칫한 자세로 꼼짝 안하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면 꼭 팽나무 이파리와 똑 닮았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애벌레는 완벽한 숨은그림찾기이다. 애벌레가 떨어질까 손으로 가만히 팽나무 가지를 있던 자리로 놓고 앞사람을 따라간다. 푸르스름하던 어둠은 완전히 캄캄해져서 나무도 수풀도 사람도 이제 검은 실루엣만 겨우 알아볼 수 있다. 형체가 사라진 밤의 숲에서 풀벌레 소리, 소쩍새 소리가 더 뚜렷해졌다.
산책을 마치고 내려와 넓은 마당에 자리를 깔고 하늘을 마주하고 누웠다. 검은 장막에 작은 구멍들을 촘촘히 낸 듯 하늘엔 별들이 빼곡했다. 낮은 능선이 에워싼 넓고 검푸른 밤하늘은 동그랗다. 산들은 부드러운 손길로 서로의 어깨에 손을 걸고 내가 누운 마당을 지켜보고 있다. 그 안에서 별빛들은 나를 향해 알 수 없는 신호로 무수히 반짝인다. 지금 이 순간 밤하늘과 나 밖에 아무도 없는 듯하다. 캄캄하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또렷하다. 숨을 깊이 마시고 잠시 눈을 감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밤하늘에 별들이 더 선명해졌다. 직녀성, 견우성, 백조자리의 데네브. 여름밤의 대 삼각형 별들을 이정표 삼아 큰곰, 작은 곰이 나타났다. 큰곰자리의 꼬리를 찾아 북두칠성 국자를 손가락으로 그려본다.
“앗, 별똥별이다.”
“와, 정말! 밝다 밝아.”
긴 꼬리를 서쪽 산으로 그리며 떨어지는 별똥별을 눈으로 쫓으며 감탄하고 나니 소원 생각이 났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다 잘 될 거야. 아무렴.’ 마음속으로 이런 것도 소원인지 잘 모르지만 넌 오늘 하루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잘했어.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잘 할 거야! 하는 다짐을 별님에게도 내 자신에게도 말해주었다.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무수동 밤 마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