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맛피아로 알려진 권성준 셰프는 과거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 아메리카노를 메뉴판에서 ‘논커피’로 분류했습니다. 지금이야 유명세를 얻었지만, 당시에는 인지도가 없었을 테니 카페 운영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셰프라 해도 카페의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카페는 실력만으로 버틸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장사를 하려면 지역의 사람을 이해해야 하고, 사업을 하려면 사회를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장사와 사업은 모두 사람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한국에서 카페를 운영한다면, 한국 사람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상적인 소비 문화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노를 ‘논커피’로 분류하는 카페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 브랜드는 스타벅스이고,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프랜차이즈는 메가커피입니다. 스타벅스는 한국인의 욕망을 정확히 이해했고, 메가커피는 한국인의 필요를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이 차이가 오늘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얼죽아’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계절과 상관없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커피가 되었습니다. 한국인은 아침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시작하고, 식사 후에도, 술자리 이후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습니다. 커피숍을 운영하는 저는 농담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코리아노’라 부르며 한국의 전통 음식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만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미 우리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런 말을 너무 쉽게 받아들입니다.
에스프레소가 진짜 커피이고,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통을 지키려는 주장처럼 보입니다. 우리 역시 물 조절에 실패한 라면을 한강이라 부르며 분노하듯, 커피 문화의 본산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화가 훼손되는 일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이 논리에는 아주 많은 문제들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제국주의 사관, 전통이라는 환상, 문화 사대주의입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
이 구조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때 사용하던 논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커피를 이렇게 쉽게 마실 수 있는 현실은 결코 낭만적인 역사의 산물이 아닙니다. 현재의 커피 산업은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유럽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식민 지배하며 구축한 구조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토착민들이 노예로 동원되었고, 제국은 자신들의 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규정하며 지배를 정당화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가진 문화가, 이제 와서 자신의 ‘정통성’이 훼손될 수는 없다 말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를 넘어 위선에 가깝습니다.
커피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커피를 에스프레소로만 한정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커피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스프레소는 완성된 커피도 아니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성역에 놓인 존재도 아닙니다. 만약 튀르키예인이 에스프레소보다 훨씬 오래된 튀르키예식 커피만이 진짜 커피라고 주장한다면, 에티오피아인이 자신들이 직접 재배하고 볶아 내린 커피만이 진짜 커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한국에서는 한국의 방식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를 요구하는 것이 실례임을 알듯, 한국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문화 역시 존중받아야 합니다. 프랑스인은 영국의 완성된 요리를 ’재료‘ 수준이라고 비웃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료’가 훌륭해야 완성된 요리도 훌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수많은 유럽인이 아메리카노를 비난합니다. 어떤 이는 아메리카노를 ‘기계 부품에서 나온 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본인의 문화는 존중받기를 원하면서 농담으로 포장하며 타인의 문화는 깎아내리는 이들을 과연 선진국 시민이라 할 수 있을까요.
21세기가 1/4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우리가 선진국이라 여기던 미국과 서유럽이 대표하는 서구 사회의 의식 수준은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이가 인종에 따른 편견을 가지고 있고, 여전히 폭력적이며, 훨씬 불평등해졌습니다. 제국은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경계가 불분명해졌을 뿐 제국은 과거보다 더욱 커졌습니다. 제국은 어제보다 오늘 더 우월해졌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분노가 사라질 때까지 제국의 야욕은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