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 며칠 사이에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맞았던 고민과 유사합니다.
사람들이 과연 이것을 이해할까?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뒤, 곧바로 법을 설하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불교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나 망설임이 아니라, 깨달음의 본질과 인간 이해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온 판단이었습니다.
붓다는 깨달은 직후 이렇게 생각했다고 전해집니다.
자신이 도달한 진리는 너무 깊고, 미묘하며, 말로 옮기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언어는 구분하고 나누는 도구이지만, 그가 본 세계는 분별 이전의 자리였습니다. 이를 말로 설명하는 순간, 진리는 왜곡되고 오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붓다에게 법을 설한다는 행위는, 진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단순화하고 훼손할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의 상태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욕망과 집착, 분노에 깊이 물들어 있는 존재들이 과연 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붓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 자체를 또 하나의 신념, 또 하나의 집착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깨달음이 해방을 위한 것인데, 법이 오히려 새로운 속박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법을 설하지 않고, 조용히 머물며 자연 속에서 머무르려 했다고 전해집니다. 진리는 스스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지, 강요되거나 설득으로 전달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범천 사함파티의 권청 이야기입니다. 범천은 붓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연꽃 가운데에는 이미 물 위로 고개를 내민 것도 있고, 아직 물속에 잠긴 것도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어둠에 잠겨 있는 것은 아니니, 들을 준비가 된 이들을 위해 법을 설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붓다는 이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꿉니다.
모두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들을 준비가 된 존재에게만 길을 보여주기로 결심합니다.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불교의 핵심 태도를 잘 드러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진리를 주입하는 종교가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보도록 돕는 안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는 설법을 시작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이것은 믿으라고 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 확인하라”고 말했습니다.
붓다가 처음에 침묵하려 했던 이유는,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말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법을 설한 이유 역시, 사람을 바꾸려는 욕망이 아니라 가능성을 존중하는 연민이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을 저와 제 주변 사람들만 잘되도록 쓰며 살아갈 수도 있고, 세상을 뒤바꾸는 데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훨씬 쉽습니다. 반면 후자는, 어쩌면 목숨까지 내걸어야 할지도 모를 만큼 힘들고 위험한 길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후자의 가능성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기존의 교육관을 흔드는 이야기, 직장 내 괴롭힘의 구조, 대학 안에서 반복되는 갑질에 관한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불편해할 것이고, 누군가는 침묵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말해야 할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는 여전히 검은 늑대가 남아 있습니다.
“뭐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 혼자 잘 먹고 잘살면 되지.”
그는 언제나 달콤한 목소리로 제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가장 쉬운 길, 가장 안전한 선택을 먹이처럼 내밉니다.
문제는 제 관심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데 있습니다. 철학과 종교, 경제와 음식까지. 한 가지 분야만 평생 파고들어도 모자란 것이 인간의 한계인데, 저는 제 한정된 삶이 너무 아까워서 쉽사리 다른 것들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포기해야 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호기심은 늘 저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 프랜차이즈는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진짜 너무 귀찮습니다.
동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번거롭습니다.
부가가치세 신고 기간이 다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회계사와 세무사로 일하는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영세한 사업자에게 그 도움은 언제나 ‘있으면 좋겠지만 감히 선택하기는 어려운 사치’로 남습니다. 결국 모든 책임은 다시 제 몫이 됩니다.
좋은 사장이 되는 길은 녹록지 않습니다.
매출을 고민해야 하고, 원가를 계산해야 하며, 임대료와 공과금, 카드 수수료와 배달 플랫폼 수수료까지 하나하나 직접 챙겨야 합니다. 손님이 없으면 불안하고, 손님이 많아도 지칩니다. 쉬는 날은 있어도 마음이 쉬는 날은 좀처럼 없습니다.
저는 한때 프랜차이즈 매장의 점장이었고, 대형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하며 적잖은 수모를 겪은 적도 있습니다. 대학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교수 열 명에게 둘러싸여 지시와 눈치를 동시에 받아야 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제게 남긴 가장 분명한 교훈은 단 하나였습니다.
적어도 저들처럼은 되지 말자.
작은 카페 사장은 늘 경계에 서 있습니다.
사장이면서 동시에 직원이고, 관리자이면서 동시에 청소부이며, 바리스타이자 회계 담당자입니다. 누군가의 실수는 곧 제 책임이 되고, 문제가 생기면 피할 수 있는 상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상해도 웃어야 하고, 몸이 아파도 가게 문은 열어야 합니다.
저는 코로나 유행이 완전히 지나간 뒤에 감염되었습니다. 모두가 조심하던 시기는 지나갔고, 마스크도 하나둘 벗어던지던 때였습니다. 그제야 저는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성한 날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가게에 나와 장사를 했습니다. 문을 닫을 용기보다, 하루 매출이 사라질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하루만 버티면 괜찮아지겠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며, 몸보다 가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겠지‘라는 핑계와 함께 이제 와서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공간을 지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권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되는 자리, 함부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최소한 누군가를 짓밟지 않고도 유지할 수 있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매출은 크지 않지만, 적어도 사람을 소모품처럼 대하지 않는 사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은 거창한 성공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내일도 문을 열 수 있기를 바라는 일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이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입니다.
좋은 사장이 되는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 뒤로 머릿 속은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
큰 고모는 며칠 전 위험하니깐 쓸데없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외도(外道)는 나와 나의 가족만을 위해 사는 길이며 정도(正道)는 나를 제외한 모든 이를 살리는 길입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십계명과 함께 오늘의 글은 짧게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절 인연이 우리를 이끌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