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승 데바닷타
작은 고모는 수녀원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저는 과거에 수십 번 출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는 정반왕이 아니며, 저의 어머니는 마야 부인이 아닙니다. 저 대신 왕위를 이어받을 아들도 없습니다. 저는 왕자가 아니기에 출가할 수 없습니다. 출가란 개인의 결단만으로 완성되는 선택이 아니라, 그 선택으로 인해 감당해야 할 관계와 책임이 전제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붓다를 죽일 기회를 엿보며 머리를 기르고, 돈을 벌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현대판 파계승 데바닷타입니다. 데바닷타는 붓다의 제자이자 사촌이었고, 십대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아난다의 형이었습니다. 그는 붓다의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서 접했으나, 결국 스스로를 붓다라 주장하고 붓다를 비판하며 길을 벗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에게 수계를 주었고, 예몽(霓夢)이라는 법명을 지어주었습니다. 파계승인 저는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저는 평범한 재가신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선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탄압받아온 불교를 여전히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의라기보다 정해진 법은 아무것도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우리는 처음에는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사유가 깊어지는 어느 전환점에 이르면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고, 물 또한 물이 아니라는 감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처럼 세상에 의미란 애초에 없었다는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산으로 들어가 저만의 구도를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만약 제가 출가해 버린다면 제 개인은 한결 편해질지 모르지만, 제 선택으로 인해 슬퍼하고 괴로워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나름대로 또 다른 업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세속에 남아, 의도적으로 아주 세속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허무를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세계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회복됩니다.
우리는 ‘무소유’를 오랫동안 오해해 왔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소유하되, 소유에 매이지 않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법정 스님의 청빈한 삶은 붓다의 제자 가운데 ‘두타제일’이라 불린 마하가섭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가섭 존자는 무덤가에서 잠을 자고, 해진 옷을 입으며 두타행을 실천했습니다. 반면 붓다는 왕의 공양을 받았고, 장자들이 바친 죽림정사나 기원정사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붓다는 가섭에게조차 극단적인 청빈 역시 중도에서 벗어난 것이라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집착의 유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환속하여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갈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시작입니다. 저는 여전히 위험한 꿈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데바닷타는 붓다를 죽이는 데 실패했지만, 저는 제 안에 있던 붓다를 죽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상화된 자기상, 성인(聖人)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상태는,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열립니다.
저의 첫 번째 목표는 죽어가는 교육을 살리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 글에서 이 나라의 교육이 어떤 인간형을 만들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자신을 ‘의주빈’이라 지칭한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은 개인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양육 환경이었습니다. 과도한 보호와 과잉된 사랑은 아이를 강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저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모교 학부사무실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며 학사 행정 업무를 맡았습니다. 가장 황당했던 경험 중 하나는, 정원 초과로 수강 신청을 하지 못한 아들을 대신해 부모가 항의 전화를 걸어온 일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자녀의 문제를 부모가 대신 해결하려는 시도는 결코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문제를 겪고, 실패하고, 상처받는 과정을 통해 성장합니다. 이 과정을 제거해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성장을 가로막는 개입에 가깝습니다.
현재 저는 부모님과 함께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추운 날이나 비 오는 날이면 퇴근하는 저를 집에 데려다 줄지 묻곤 하십니다. 그 마음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저는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때로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고 싶은 충동으로 변질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학부모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나와 내 가족이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랍니다. 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본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은 인물이 있습니다.
붓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왕자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와 갓 태어난 아들 라훌라까지, 세속적 행복의 조건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행복이 필연적으로 무너질 것임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늙음과 병, 죽음 앞에서 가족조차 지켜낼 수 없다는 자각이 그를 궁궐 밖으로 이끌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뒤 붓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떠날 때는 홀로였지만, 돌아올 때 그는 이미 제자들을 거느린 수행자였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재산이나 왕위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출가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아내 야소다라 또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붓다는 가족을 세상으로부터 분리해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세상을 가족으로 삼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다정한 선택이 아니라, 철저히 일관된 선택이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예외로 두지 않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교육은 의도와 달리 수많은 아이들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등떠밀었습니다. 교육은 대체 무엇이며 우리들은 왜 대학에 갔을까요. 왜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교권이 떨어졌을지 저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가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못되쳐먹은 악마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그들과의 성전을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