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과제가 있습니다.
삶과 죽음.
삶과 죽음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하고
현대인들은 그중 하나를 골라 과학이라 부릅니다.
인문과학에는 문·사·철이 있고
자연과학에는 수·물·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고
죽음을 대신 맞아주지는 않습니다.
지식은 설명을 거들어줄 뿐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해답은
각자 찾아야 할 몫입니다.
혼자서는 답을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유일하게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할
조별 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으로 치환되어 흐릿해진 의식 속 잔상.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것은 진실한 것일까요.
이것들은 진짜로
존재하는 것들 일까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위 내용은 금강경의 핵심을 관통하는 사구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문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붙잡고 있는 것들은
사실 꿈과도 같고, 환영과도 같으며,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거품이나
붙잡을 수 없는 그림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기쁨도, 성공도, 고통도, 실패도
모두 조건이 맞아 잠시 나타났다가
이슬이 햇빛에 스러지듯
번개가 하늘을 가르듯
순간적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세상을 부정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이 영원하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붙잡으려 할수록 괴로움이 생기니,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만큼만 받아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응작여시관”이란
도망치듯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삶을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삶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관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잃는 것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얻는 것 앞에서 오만해지지 않습니다.
삶은 여전히 흘러가지만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서게 됩니다.
그것이
금강경이 말하는
삶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찰나와도 같습니다.
138억 년 우주의 역사 속에
한 사람의 100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글의 종류나 문맥에 따라 ‘부처님’, ‘부처’, ‘붓다’를 선별적으로 사용하니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2024년 6월부터 작년 12월 초까지 1년 6개월 동안 스님 법문을 달고 살았습니다. 인생과 카페를 운영하는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에는 아예 듣지 않고 있으며, 필요한 자료가 있을 때마다 검색해서 글을 쓰는데 참고할 뿐입니다.
팔만대장경의 무수히 많은 가르침은 하나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 대해 관심있는 분은 따로 연락주시면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좋은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gimyem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