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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컨드윈드 Jan 19. 2024

'돌아온 게릴라 콘서트, 2024' - 1편

약속의 7시

 차 트렁크에 짐이 한가득이다. 모두 나를 보고 학교 용·기구실을 다 털어 왔냐고 물었다. 야구 강의라서 짐이 더 많다. 아버지 SUV 차가 없었다면 왕복 100km의 거리를 왕복할 뻔했다. 아무리 좋은 강의라도 짐이 많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경기 의정부에서 이천까지 가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출발과 동시에 변수가 발생했다. 평소에는 튼튼하고 탱탱해 보였던 타이어가 문제였다. 분명 전날 아버지께서는 타이어 공기압을 확인하고 바람 빠진 곳을 채웠다고 하셨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비소에 가보라고 하셔서 핸들을 돌렸다. 타이어를 확인한 정비소 사장님은 마모상태가 심각하여 4개 다 교체할 것을 권유했다. 아... 옛말에 돈이 들어올 때면 어떻게 알고 돈 쓸 일이 생긴다고 하더니만. 강사비가 나오기도 전에 시원하게 결재할 일이 생겼다. 아버지 큰 그림일지 모른다는 불순한 생각과 동시에 안전하게 운전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카드를 긁었다. 새 타이어의 좋은 기운과 함께 이천에 도착했다.

2023 통합체육 교사연수 - 대한장애인체육회 주최(사진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2024년 1월 8일. 전국 통합체육 교사 연수를 시작하는 날. 전국 초등교사, 초등 특수교사, 중등 체육교사, 중등 특수교사 200명이 이천선수촌에 입소했고, 캐나다 팀 중 3명은 강사진으로 참여했다.

 나도 강사로서 ‘팀빌딩’과 ‘야구’ 2개 강의를 담당했다. 강의 회차로는 2시간씩 총 12개 강의다. 사실 강의를 제안받았을 때부터 설렘보다는 부담감이 컸다. 다른 강연자들에 비해 2배 많은 강의수와 교육 대상이 학생이 아닌 교사였기 때문이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임용고시 때처럼 수업실연을 반복했다. 강의 질이 전문성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 나름 완벽주의 성격 탓에 더 많이 신경 썼다.

  1월 8일 오전부터 1월 10일 오전까지 초등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진행했다. 각 반 34명 정도 되는 A, B, C 3개 반이었다. 2012년에 초등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수업 전문성으로 말하자면 초등 교사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전 교과목을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나도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수업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 나보다 전문성이 뛰어난 선생님들 앞에서 강의를 하려니 긴장도 됐지만 선생님들이 잘 도와주실 거라 믿었다. 


 초등 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가 처음이었기에 선생님들 체력과 운동 기능 수준, 성비가 궁금했다. 모든 반이 7대 3 또는 8대 2 정도로 여자 선생님이 많았다. 팀빌딩은 조직 내 협력을 이뤄내는 활동이라 성비가 문제 되진 않았다. 하지만 야구는 얘기가 달랐다. 일반 학교 내 남·여학생 성비는 50%로 비슷한 수준이다. 일부 여학생이나 운동 기능 수준이 낮은 남학생들이 공을 못 잡거나 타격하지 못해도 운동을 잘하는 남·여학생들이 제 몫 이상을 해줘서 경기가 잘 진행된다. 게다가 나보다 먼저 강의를 한 강연자들이 초등 선생님들은 운동을 잘 못한다고 겁을 줬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내가 준비해 온 강의를 대폭 수정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졌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 보자는 마음으로 야구 강의 구성 내용을 재차 확인했다. 캐치는 모두 가능하지만 계속 타격이 걸렸다. 타격 연습은 가능하겠지만 타격이 안되면 경기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체 경기를 마련해 두고 타격 연습을 지켜보면서 상황 판단을 하기로 결정했다.


 A반 강의를 끝내고 B반 강의 분위기가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의에 앞서 B반 선생님들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모든 강사 분들이 B반 수업 분위기가 최고라고 하네요. 그럼, 제가 기대해 봐도 될까요?”라고 말하니, 일제히 큰 소리로 “네”라고 답하셨다. 멘트 하나에 모두 즐겁게 강의에 참가할 준비가 됐다. 나는 ‘무투약효과’(플라시보 이펙트)를 했을 뿐인데 긍정적인 반응이 바로 나타났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구로 수업을 하다.’가 내 강의 주제였다. 야구 수업을 한 이유와 장애-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 수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했다. 8년 간 통합수업을 해오며 고민했던 점과 접근하는 방법에 관해 간단히 언급했다. '장애 학생을 위한 통합인지? 비장애 학생들을 위한 통합인지? 누굴 위한 통합인지'에 대해 설명할 때 많은 선생님들이 깊이 공감했다. 

 또한 체육교사로서 수업을 하다 보면 체력 및 기능 수준 차에 따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구분될 수밖에 없다. 잘 못하는 학생은 자연스럽게 그 종목을 싫어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던 나만의 과제였다. 인기 종목인 야구가 그 해결책이었고, 이를 많은 교사와 공유하고자 했다.

 이론 강의가 끝나고 선생님들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야구 수업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야구는 무엇일까요?’인데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야구는 열정이다. 치고 달리는 거다.” 등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네, 선생님. 맞습니다. 야구는 말이죠, '무조건 뛴다.'입니다. 그럼, 다 같이 외쳐볼까요?”

“야구는 뭐다?”

“무조건 뛴다!”

 선생님들 얼굴엔 미소와 기분 좋은 긴장감이 엿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토할 정도로 뛰셔야 공을 잡습니다. 그리고 곧 웃으면서 뛰게 되실 겁니다. 파이팅!”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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