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7시
긴장반 기대반으로 야구 실기 연수가 시작되었다. 각 반 95% 정도 인원이 야구를 처음 해본다고 했다. 이런데도 연수가 될까 싶었지만 학생들을 떠올리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도 야구를 처음 해봤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수업을 해냈다. 그래서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연수 전 선생님들께 안전사고 주의를 안내하고 시작했다.
간단한 공 적응 훈련부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테니스공과 연식구를 이용했다. 야구를 생전 처음 해 본 선생님들은 자신들이 공을 잡을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맞은편 짝꿍 선생님과 서로 크게 웃으며, 땅볼과 미들볼을 주고받았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선생님들은 즐거워했고, 밝게 웃으며 뛰기 시작하셨다.
4개 조를 편성하여 기본 훈련과 간이 게임을 실시했다. 일부러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우리 내면에는 숨겨진 승부욕이 있지 않은가. 선생님들은 자기 조가 이겨라 목청 것 더 크게 외쳤다. 짧은 순간에도 진심을 다하는 선생님들 모습이 멋졌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전 강연자들이 겁을 줬던 것과는 달리 초등 선생님들은 운동 능력 수준이 꽤나 높았다. 미국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에 영입된 이정후 선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남·여교사 모두 타격이 선수급이었다. 가장 큰 걱정거리가 사라졌다. 원래 준비했던 야구 경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선생님들도 야구 경기를 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1회는 조건 없는 일반 야구 경기, 2회는 휠체어 타는 장애 학생이 있는 통합 야구 경기로 진행했다. 규칙 설명 이후, 홈으로 들어오는 주자는 더그아웃(벤치)에 있는 같은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야 점수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수업 때 적용해 보라고 아내가 준 아이디어였는데 선생님들에게도 통했다. 선생님들은 더 즐거워했고, 팀을 하나로 만드는 장치 중 하나가 되었다.
장내는 이미 흥분의 도가니 상태였다. 공격과 수비를 정하는 순간 팀별로 모여 전략 회의까지 실시했다. 이 정도로 진심이셨나. 정말 감사했다. 타격 하나에, 수비 하나에 모든 선생님들이 집중했고 경기에 푹 빠져들었다.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경기에 최선을 다했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타격 후 빠르게 휠을 돌리고, 서로를 보조하며 응원하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경기 진행 및 심판을 하는 나도 즐거웠다. 진 팀과 이긴 팀이 있었지만 우리에겐 승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강의 말미, 나는 올림픽 정신을 전했다.
“올림픽 정신은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참가에 의의를 두며, 자기 기량을 다 보여주는 겁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저에게 올림픽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갔다. 아직 더 알려드리고 싶은 게 많은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저희는 더 할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네?”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저희는 다시 올 수 있어요.”
“네? 다시 오신다고요?”
“맞아요. 저희 7시에 다시 올게요. 그때 준비하셨던 거 알려주세요. 배우고 싶어요. 강사님.”
“정말 모두 다시 오실 건가요?” 재차 물었다.
“네!” 전보다 더 큰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네, 그럼 저 지금부터 마이크 끄겠습니다.”
이때부터 선생님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선생님들, 저 바람 맞히려고 그러시는 거 아닌가요? 재작년에 저희 반 여학생들이 밥 같이 먹자고 해놓고 저만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밥 먹으러 갔단 말이에요. 진짜 진심이시죠?” 나름의 흑역사까지 동원해서 물어봤다.
대답은 동일했다.
“네!”
“정말 비밀인데요. 진짜 오실 거면 A반과 C반에는 절대 말씀하시면 안 돼요. A반은 이런 말 안 했단 말이에요. 혹시나 친한 분 계시면 살짝 얘기만 전하시고요. 그럼 저는 7시 전에 와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며 강의를 마쳤다.
반신반의하며 이 사실을 같이 강의 나왔던 동료 교사들에게 말했다. 다들 크게 웃으며, 굳이 그렇게까지 하냐고 말했지만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가수가 공연 후에 앵콜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강의 앵콜이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여기에 약속한 대로 다 오실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용·기구 정리를 마치고 저녁 식사하러 식당에 갔다. 먼저 식사를 마친 B반 선생님들께서 나를 향해 걸어오셨다. 의미심장한 눈빛과 함께 손으로 숫자 ‘7’을 만들어 보이셨다. 마치 007 첩보 작전 같았다. 나도 눈으로 웃으며 인사했다. 길을 가다 마주친 또 다른 선생님들도 '7’이라는 싸인을 보내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컸지만 선생님들과의 약속은 지켜야 했다. 6시 45분쯤 다시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둠이 깔린 시간이라 인적은 드물었다. 밝은 불빛이 내비치는 체육관 안, 부푼 기대감을 안고 오른발을 들이밀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 체육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의를 지원해 주는 요원 두 명만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6시 55분이었다. '아. 선생님들한테 정말 바람맞은 건가. 나만 또 설렜네.'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바로 숙소로 돌아갈까 했지만 약속 시간은 7시였으니 그때까지 있어보기로 했다.
6시 58분,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 저 멀리 문 밖에서 B반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들어오시는 거였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게 된다고?'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밝은 미소로 선생님들을 맞이했다. 사실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했다. 안 오셔도 할 말은 없지만, 길이길이 회자될 놀림거리이자 술안주가 될 뻔했다. 선생님들은 진심으로 앵콜을 요청하신 것이었다.
2000년 초반 한 방송사에서 시작한 게릴라 콘서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지금이야 SNS를 통해 금세 소문이 퍼지지만 그때는 달랐다. 제한된 시간에 홍보하고 목표 인원을 달성해야만 시작할 수 있었던 공연. 그때 안대를 벗기 전 가수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긴장감과 안도감 그리고 감사함. 이제 나도 그 심정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들께 고마운 마음에 앵콜 연수 끝나고 인증샷 찍자고 말했더니 모두 좋아하셨다. 소싯적 학생들에게 팬싸인 해줬던 옛 기억이 떠오르며 앵콜을 시작했다.
“선생님들! 이번에는 토할 정도가 아니라 미칠 정도로 뛰어야 합니다!”
모두 밝게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추가 연수는 7시 50분에 끝났다.
다음에도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전날 밤 긴장한 탓에 잠을 설쳐 1시간 밖에 못 잤다. 그럼에도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가장 힘이 났고 행복했다.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할 특별함과 나만의 소중한 추억을 갖게 되었다.
앞에서 아무리 좋은 강의라도 짐이 많으면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말했다. 다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강의라면 짐이 많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