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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Jun 10. 2020

시험관의 화룡점정, 채취

- 채취한 날 쓰는 난임 일기

오늘 채취를 했다. 시험관 장기 요법을 5.9(토)부터 시작했으니 딱 한 달 걸린 셈이다. 데카펩틸 25번, 퓨레곤 2175미리, 메노푸어 5번, 오비드렐 1번으로 자가  주사를 무려 42 맞았다. 2주가 소요됐던 단기요법에 비하면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결과만 좋다면..' 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임했다. 주사 입구를 소독하고, 바늘을 꽂고, 약을 용량에 맞추고, 배를 소독하고, 주사기를 배에 꽂고, 약물을 쭉 주입. 이제는 소꿉놀이하듯 적응했다. 아픔도 없다. 무엇보다  몸을 제일  아는 수간호사(?) 남편이 있으니 걱정도 없다.  


매일 아침 나의 루틴, 주사맞기


병원에 도착해 바로 수술실로 안내받았다. 옷을 전부 탈의하고 수술복을 입었다. 배정된 자리에 눕고 혈압을 재고, 수액을 맞았다. 마취를 위해 몸무게를 물어보셨다. 준비가 끝난 후 걸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 복장을 한 간호사 세분과 냉랭한 기운이 가득한 수술실이 나를 맞이했다. 한 번 왔던 곳인데도, 낯설다. 초음파를 볼 때보다 더 굴욕적인 의자에 앉자 팔과 다리를 고정해주셨다. 수술 중의 움직임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떨리지 않았지만 긴장됐다. 선생님이 들어와 "안녕하세요, ooo님. 금방 끝날 겁니다."라고 웃으며 말해주셨다. '마취제 들어갑니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프로포폴을 느껴볼 새도 없이 까무룩 잠들고 말았다.


배 주사 한 무더기


눈을 떴더니 대기했던 침대 위였다. 언제 채취했는지, 누가 나를 옮겼는지, 아무 기억이 없지만 아랫배에 묵직함이 있는 걸 보니 무사히 일이 끝났나 보다. 엉덩이 주사를 한 방 더 맞고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결과를 설명해주셨다. 단기 때보다 많은 알이 채취되진 않았지만 모두 성숙란이고 이식에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기실로 나왔다. 상담실에서 질정을 처방받고 주의사항을 듣고, 3시간가량 떨어져 있던 남편을 만나 병원을 나섰다. 경험의 차이일까. 한 번 해봤다고 두려움이 덜하다. 집에 와서도 편안히 움직였다. 밥 먹고 책 읽고 드라마 보고.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 싶다. 과배란이라는 언덕을 지나,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 이식까지 잘 버텨보자.


병원에 버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모아둔 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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