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사랑 Jun 14. 2020

배아 이식 후, 나와 우리의 시간

- 시험관 이식 후의 난임 일기


어제 이식했다. 5개 채취, 3개 수정란, 2개 폐기, 냉동 0개. 성적표 같은 수치를 받았다. 단기로 진행했던 1차보다 장기로 진행한 2차의 결과가 떨어졌다. 무슨 상관이랴, 수정란이 1개라도 만들어진다면  마음으로  품어 세상에 나오게   건데. 선생님은 약간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래도 이식할 수 있으니까 전 좋아요 했다. 대신 질정뿐 아니라 주사도 맞고 싶다고 했다. 후회 없이 모든 하고 싶다.



내 배아들. 내 아가들. 오줌을 있는 데로 참고 이식을 받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망설이니 “아무 상관없다. 참는 게 오히려 자궁을 누를 수 있고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라고 간호사분이 말씀해주셨다.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 30분 정도 쉬고 상담실에 들렸다가 수납을 하고 집으로 왔다.


꽤 초연하다. 카페를 들락거리며 이거 저거 따져보던 지난번과 달리, 책 읽고 글 쓰고 드라마 보면서 하고 싶은, 매일의 내 삶을 살고 있다.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한다. 뭘 했는지도 무색하게 몸은 복수가 빠져 한 껏 가볍다. 내일은 출판사에 보낼 서평 두 편을 쓸 것이고, 다음 주 토론 도서를 읽고, 오늘까지 정주행 한 드라마를 리뷰할 것이다. 나는 나의 시간을 산다. 배아들이 내 자궁 속에서 분열하고 자리 잡으며 묵묵히 살아내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믿는다. 배아들이 무던하게 잘 자라 나와 여보에게 올 거라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시험관의 화룡점정, 채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