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지 3개월이 지나 서다. 장례를 치르고 시댁의 일들을 같이 처리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와 변함없이 아침에 눈을 떠 회사에 출근하고, 업무를 보고, 더위를 피해 간혹 아아를 한잔 마시고, 퇴근 후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잠드는 일상. 보통의 날들을 살고 있다.
“아버지가 숨을 안 쉬신대.”
병마와 싸우고 계시던 아버님을 뵙고 온 지 반나절이 지났을까.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아버님 모습에 감히 말도 못 붙이고 멀찍이서 숨죽여 바라만 봤다. 병실을 나서기 전 ‘아버님, 저 이제 가요.’라고 어렵게 입을 뗐다. 간헐적 호흡과 초점 없던 눈동자의 아버님이 갑자기 손을 뻗으셨다. 에너지를 급작스럽게 부여받은 것처럼. 아버님의 마지막 인사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시부상을 지내러 내려가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는 눈물이 흘렀다. 살갑지 않았다. 요즘은 다른 시대라고, 매사 당차게 대꾸하는, 친절하지 않은 며느리였다. 어쩌다 하시는 말씀 한 마디에 입술을 삐죽거렸다. 착하고 바른 남편은 나의 오해라고 했다. 아니라고, 결혼하면 남자들이 다 효자가 된다던데 여보도 마찬가지라고, 또 신나게 대꾸를 했었다. 이제는 그것마저 죄송하다. 살갑지 못했고, 여행 가자 맛있는 거 먹자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무엇보다 몇십 년을 펴 오시던 담배를 끊어가며 기다리던 손주를 안겨드리지 못했다.
부모님 보내고 나면 꼭 못한 것만 생각난다던 어른들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시댁 부모님이 아이가 왜 생기지 않는지 우회적으로 물을 때면, 악다구니에 받쳐 그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고 답했었는데.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된다. 아버님을 보내드렸다. 어른들은 떠나신 아버님이 곧 아이를 보내주실 거라고 말씀하신다. 아이를 갖지 못한 일이 더없이 한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