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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Jul 11. 2022

갑자기, 두 줄

- 휴직 일기


"여보, 나 글이 안 써져." 읽고 보고 듣고 느끼는 거의 모든 감각에 대해 글로 적었던 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거의' 모든 글쓰기를 멈췄다. 손가락이 나아가지 않았고 생각도 엉켜 있었다. 나의 푸념에 남편이 대꾸했다. "당연하지. 여보 요즘 너무 행복하잖아?" 그런 건가? 너무 행복해서 글도 안 써지는 건가?


휴직이라는 '황금기'가 벌써 절반이 지났다. 배 속에 품었던 쌍둥이들의 심정지를 확인하고 수술실에서 보내주기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내 몸과 마음의 회복은 더뎠다. 임신이나 유산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목이 메었다. 사고가 정지됐다. 그런저런 시간을 뒤로하고 임신 전과 같은 강도로 운동을 하기까지 3개월, 사람을 만날 수 있기까지는 4개월이 걸렸다. '유산해서 쉬고 있습니다.'라는 자기 고백을 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반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을 통해, 나는 꽤 회복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4 , 정체를   없는 복부 통증에 시달렸다. 앉지도 눕지도 못한 상태로 식은땀을 흘렸다. 초음파로 살펴본  자궁은, 얼룩덜룩. 이전과 달랐다. 의사는 자궁경을 권했다.  자궁을 억지로 열어 아이들을 빼냈던  공간에, 아이들이 남겨준 태반 잔여물을 없애러 다시 들어가야 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그래도 울진 않았다.  많이 나아졌어.. 그래. 괜찮아.. 스스로 토닥였다. 의사 선생님은 자궁경이  되었으니 다음 생리 주기  다시 사이클을 돌려보자고 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언제... 할까? 다시 할까?" 과배란-난자 채취-이식-2주간의 기다림-결과... 그 사이클을 다시 시작하는 거였다. 시험관 4회, 인공수정 2회. 지금의 나는 무소의 뿔처럼 '임신'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리던 때와 달랐다. 임신 전 기다림의 고통과, 임신 후 지켜내지 못한 슬픔을 모두 알아버렸다. 두려웠다. 망설이던 찰나,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의사 선생님이 다시 만나자고 했던 '다음 생리 주기'는 어버이날과 겹치고 말았다.


매일 아침 산책길에 하늘 사진을 찍었다


여유로운 일상 그리고…


일상을 살았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거실에 앉아 멍~하니 밖을 쳐다본다. 산 허리에 걸쳐있는 흘러가는 구름이 보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있으면 에너지가 충만히 차오른다. 그 후 필라테스 수업을 들으며 몸을 풀고, 산책으로 1만보를 걷는다. 클린식으로 점심을 챙겨 먹고, 설거지를 비롯해 살림을 하다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을 준비하고,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 함께 산책을 한 후,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꽉 찬 시간. 유산은 슬펐지만 덕분에 나의 심신을 어루만지는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부했다. 내가 너무 행복하다는 남편의 평은 너무 정확한 걸까?


6월 첫 주 금요일, 엄마와 데이트를 했다. 인왕산 자락을 걷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뜨거운 햇볕에 오래 서있었는지 그다음 날부터 얼굴에 홍조가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 이틀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서울로 피부과를 갈 생각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무심하게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들었다.


두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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