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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랑 Apr 27. 2020

시험관, 이번에는 꼭 성공하겠습니다.

- 난임 일기


다시 병원을 예약했다. 시험관 시술 실패 후, 한 달을 쉬고, 두 번째 생리가 시작한 지 12일째 되는 날 다시 보자고, 마지막 진료 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생리가 시작되자 기분이 묘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설렘과 '또 시작'이라는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순식간에 한 달이 지나갔다. 보약을 먹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회사(팀장님에게만)에 시술 계획을 알렸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해, 이제 나는 다시 시험관을 시작한다.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3월 시험관 실패 후 어두워진 마음을 다잡으려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책 읽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 터라 '온라인 독서모임'이라는 소리에 냉큼 접수했다. 책에 정신을 뺏겨보자 싶었다. 그런데 왠 걸 모임의 부제가 '자기 사랑(자기 변화) 프로젝트'였다. 책으로 자신을 알아보고 변화해보자는 모임. 첫 번째 주제 도서가 '자기 사랑'이었다. 수시로 떠오르는 감정들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내려두고, 놓아두자.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계속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해주라고 책과 모임은 권했다. 장난 같은데. 과연? 될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달랐다. 말할수록, 생각할수록, 마음먹을수록 나는 점점 편안해졌다. 평화로워졌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내뱉는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남편에게도 전한다. 여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정말로 소중한 것만 남기세요.


살림도 둘러봤다. 주변을 채우고 있는 '물건'들이 덕지덕지 붙은 살처럼 갑갑하게 느껴졌다. 정리와 관련한 영상을 찾아보고 다른 이들의 글을 읽었다. 소중한 것만 남기고, 설레지 않는다면 버리라 했다. 실천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옷, 책, 그릇, 신발, 이불... 덕분에 옷 장에는 여유롭게 옷이 걸렸고, 신발장 한 칸은 신발이 아닌 온전한 살림 수납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꼭 읽겠다며 쌓아두기만 했던 책은 주변에 나눴더니 '좋은 사람'이 되었다.


"나 사실, 시험관 실패했어."


친구들에게 커밍아웃도 했다. 숨길 일도 아닌데, 그간 입을 떼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12월에 인공수정했고, 3월에 시험관 했어. 인공수정은 착상 후 화유로 끝났고, 시험관은 착상조차 되지 않았데.' 예상외로 덤덤히 말했다.  유산을 경험한 친구는 몸을 편히 쉬라며, 몸만 생각하라 당부했고, 미혼인 친구는 그런 줄 몰랐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친구들이 내게 미안해했다. '에이~ 아니야, 이제 괜찮아. 5월에 다시 시작할 거야. 그때 조카 생기면 잘 챙겨줘라.'라며 웃고 떠들었다. 내 일에 이렇게 같이 웃고 울어주는 친구들이 있다니 참 행복하다.


체중감량보다 건강


운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계단 오르기, 1만 보 걷기. 바이크는 연일 40분 이상씩 탔고, 주말에 산책도 자주 챙겼다. 식습관도 점검했다. 커피는 그간 마시지 않았더니 욕구가 완전히 사라졌다. 보약보다 쓰게 느껴져 못 마실 정도. 밀가루류는 선물로 받거나 남편이 사 오는 디저트를 제외하고는 직접 사 먹는 일을 줄였다. 또 야채나 과일과 같은 건강한 식재료로 밥상을 차리려 노력했다. 이렇게 소소하게 노력한 일들이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 테지. 더 나아가 5월의 시험관 시술도 긍정적인 결과로 이끌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험관 1차 이식 때 누웠던 병실


병원 예약을 했을 뿐인데,  결심을   마냥 가슴이 뛴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살폈고, 살림을 정리하며 군더더기를 없앴고, 운동을 하며 속 건강을 챙기고,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았다. 내 삶의 하나하나를 살피고 확인했던 지난 두 달. 이번에는 장기 요법이라 주사 양이며 횟수도 늘어난다 했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건강하길, 이뤄지길,  안에 생명이 잉태되길. 만출이라는 기적을 행해볼  있길. 소망하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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