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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리 Jun 16. 2024

코로나 시국,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온 부녀

2021년 어느 여름 날  

해외에서 입국하면 한국인은 자가격리, 외국인은 정부에서 지정한 격리시설에서 14일간 강제격리를 해야 했다. 해외입국자 중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하고, 외국인 임시격리시설에서 탈출한 외국인이 붙잡혔다고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던 때였다.  


출입국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한국에 꼭 와야만 하는 노년의 캄보디아 사업가 S가 있었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고, 그 경과추적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 분이었다. 작년에 이미 진료를 받았어야 했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입국이 여의치 않아 미루고 있었다. 일흔이 훌쩍 넘으신 연세에 최근 건강이 다시 나빠지고 있고, 한국 입국을 더 미룰 수 없었다. 그 분은 가장 예뻐하는 막내딸 한 명과 함께 한국에 왔다.  


코로나 시국,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온 부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면 감염의 우려가 있어서 그들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왔다. 


잠시 그 사업가분을 소개하자면 캄보디아내 주요 도시에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주요 도시의 제일 크고 좋은 호텔이 그 분 소유였다. 호텔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캄보디아도 해외입국자 전원 강제격리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그 분은 캄보디아에 입국하면 바다가 보이는 넓은 별장에서 요양 겸 격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국은 외국인 해외입국자의 격리시설이 입국시 랜덤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어느 곳으로 가게 될지 미리 알 수 없었다. 늦은 밤 도착한 그 분들은 인천공항에서 경기도 수원 소재의 비즈니스 호텔에 묵게 되었다. 아마도 코로나 시국이 아니라면, 그들은 그런 작은 호텔방에 묵을 일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 분의 막내딸은 내 또래였는데, 캄보디아에서 아는 분이 그녀에게 내 연락처를 전달했다. 한국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내게 연락하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막내딸인 듯 했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격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내게 여러 부탁들을 했다. 혹시 스위트룸으로 바꿀 수는 없는지, 아버지가 걷기 운동이라도 하셔야 하는데 객실로 트레이드밀을 갖다 줄 수는 없는지, 외부에서 음식을 조달 받을 수는 없는지 등. 격리가 엄격하게 시행되던 때라, 외부에서 간식을 들여보내주는 것 빼고는 가능하지 않았다. 


당시 외국인 격리시설마다 의료진이 상주하며, 매일 입국자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있었다. 사업가 S는 작은 객실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어느 날 호흡도 불편하고, 안색도 나빠지는 등 건강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고령과 병력으로 인해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어, 더이상의 호텔 격리가 위험했다. 결국 구급차를 불렀고, 여러 절차 끝에 서울 아산병원으로 갈 수 되었다. 


아산병원 도착 후, 두 부녀는 병실에 격리되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해야 했다. 해외입국자 강제격리기간을 다 채우지 못해서, 병실에서 남은 기간을 채워야했다. 갑작스러운 병원 격리로, 그녀는 내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아버지가 잘 드시는 한국 음식 배달이나, 본인이 먹고 싶은 햄버거 배달을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쿠팡이츠 등 배달앱으로 주문을 하면, 외국인 환자를 도와주는 병원내 직원이 픽업을 해서 그녀에게 가져다 주었다. 강제격리를 많이 경험해 본 바, 격리 중에는 먹고 싶은 음식이 많다는 걸 안다. 그녀는 미안해하면서 부탁했지만, 나는 캄보디아에서 입국 후 시골 친정집에서 자가격리 중이었으나, 휴대폰에서 버튼만 몇 번 누르면 되는 일이었으니 힘들거나 귀찮을 것도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진료 완료일이 가까워오자, 귀국편에 가져갈 한국 물품들의 조달을 부탁했다. 병원에서 퇴원하면 바로 공항으로 이동해서 귀국할 예정이었고, 여전히 격리 중이었으니 그녀가 밖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살 수 없었다. 그녀는 돌아갈 자가용 비행기에 싣고 가겠다며, 내게 원하는 물건 목록을 말했다. 아버지께서 잘 드신다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 모찌 딸기맛, 임신한 언니가 좋아한다는 꼬막, 그리고 아버지 기력 회복에 좋을 문어, 전복, 랍스터, 도다리, 옥광밤, 은행, 대추, 컷코 주방칼세트 등 품목은 다양했다. 나는 베스킨라빈스 본사와 수산시장 거래처 등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나도 자가격리중이라 돌아다닐 수 없으니, 주어진 미션은 모두 유선 혹은 온라인으로 해결했다. 


귀국 날까지 그녀가 부탁한 물품은 계속 늘어났지만, 한국의 빠른 배송 시스템 덕분에 모두 제때 조달이 가능했다. 물건 종류별로 박스를 나누고, 박스마다 무슨 내용물이 들었는지 알아볼 있도록 표시를 했다. 그녀에게도 박스별로 무슨 물건이 들었는지 공유했다. 캄보디아에 도착하면 물건을 나눠야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수신자에 맞춰 나눠담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맥도날드 햄버거 100개를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버거킹도 아니고, 쉑쉑도 아니고, 맥도날드 햄버거라니. 아마도 맥도날드 햄버거에 추억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두 명이 타고 온 비행기에 내가 준비한 물건들이 다 실릴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으나, 그건 그녀가 알아서 할 문제였고, 나는 그녀가 부탁한 모든 물건을 정시에 공항으로 보냈다. 


그녀는 자가용비행기가 김포공항에서 출발한다고 했지만, 출발 2시간 전에야 김포공항이 아니라 인천공항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고. 다행히 인천공항으로 보낼 차량을 바로 준비할 수 있었다. 모든 물건은 정시에 도착해야 할 곳에 문제없이 도착했다. 


코로나 시국의 원격 쇼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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