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

by 선우

안경을 바꿨다


몸만 크고 안경테만 바꿨다

진정으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몽롱하게 구름 위를 떠다니던 유년시절

옳고 그르다의 판단 기준이 되는


존경했던 웃어른들의

좋아했던 친구들의

사랑하는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것은

삶의 패착 요인이 되었다


원인과 결과

선택과 결과

과정과 결과


결과 결과... 결과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남들에게 보이는

그럴듯한 모양새의 삶들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만 켜면

쏟아지는 남들의 성공들과


지난날 수평적인 비교만 하면 되었던 우리네 삶은

sns를 통해 수직적 비교로 나아가게 되고


끝없는 불안과 전에 없던 불안으로

벌벌 떠는 겁쟁이가 되기 쉬운 세상


안경을 벗었다


시력이 나빠서 사물이 뿌옇게만 보인다

급격히 느껴지는 불편이 불안으로 탈바꿈한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진 뿌연 안개가

안 보여도 좀 괜찮은 거라고

나를 토닥토닥 안아준다


안경을 벗고 보는 세상도 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모든 것을 정확히 보려 하지 않아도

지나가고 마는 것들에

애써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코 끝에 느껴지는 로즈메리 향기와

손가락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항해만

내 곁을 지키며 계속 살아나갈 수 있다면


나는 그대로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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