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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pr 06. 2022

사랑과 지우개의 상관관계

사랑은 지우개로 지울 수 있게끔 하자


봉숭아 물들이듯 새끼손톱에 새긴다면

잘려나갈 의미 없는 되새김질이 될 테니


사랑은 연필로 꼭꼭 눌러써서

지우개로 지우는 것이다


토독토독

옥수수 알이 팝콘 되듯이

우리 안에 파르르 톡톡 희망이 터져나가듯이


그때의 그 사진을 들여다보다 보면

이것을 왜 못 지웠는가

하는


이것을 지우는 일이란

그때의 나도 지우는 일이어서 그런 것이다


내 모습을 지우는 일


그때의 네 옆에서

그 누구보다 화사했던 나 자신을 지우는 일은

한껏 힘을 들여 지워내야 할

꾹꾹 눌러쓴 연필의 흔적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너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는 길은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내 안에 너는 꽃잎처럼 봄이 차오르는데


뒤적거린 사진첩에서 우리를 찾아서

덜컥 휴지통으로 보내려다가


말았다


내가 너에게 하려던 말

덜컥 지우려다가


말았다


꾹꾹 눌러쓴 그때 그 편지

연필로 슥슥 긁어보면

떠오른다 내 마음

잊지 못할 세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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