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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Nov 18. 2021

'식구'라는 말의 의미

같이 밥 한번 먹어요

"박민하 님?”

“네? 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긴장한 탄식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면접장. 발에 맞지도 않는 구두와 몸에 맞지 않아 괜히 어정쩡한 정장. 눈앞에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라는 사람을 평가할 면접관들이 앉아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다.


  순식간에 면접은 끝나버렸다. 면접을 보는 내내 몸이 뻣뻣하게 긴장이 들어갔던 탓인지 준비했던 것의 반의반도 보여주지 못하고 나왔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느낌상 이번에도 떨어진 듯싶었다. 누구나 실패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나도 그 사실을 엄연히 알고 있지만 계속된 불합격 통지 속에서 실패자의 역할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할 수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던 내 호기로운 모습은 어디로 꽁무니 쳐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그깟 거절 몇 번 당했다고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아프지 않다고 허세를 한번 부려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날아오는 불합격 통지 문자는 뒷맛이 떫다.


   버스를 타고 터널 터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뭐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핸드폰 앱을 켜고 배달음식을 고른다. 바깥 풍경으로 고개를 잠깐 돌렸다. 그러다 버스 차장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버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표정이 없다. 공허한 눈빛과 무겁게 내려앉은 앞머리와 면접을 보기 위해 염색한 차분한 검은색의 머리칼. 마음이 슬픈 것인지 몸이 아픈 것인지 도무지 내가 나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멍하니 다시 핸드폰으로 고개를 내리고 배달시킬 음식을 골랐다. 한참이나 고민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자취를 시작하고나서부터 핸드폰 앱으로 시켜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다 시켜본 것 같다. 고민이 길어졌다.

 

   내 자취방은 이태원 주변에 있다. 자취 초창기에는 파스타, 피자, 치킨, 쌀국수, 케밥 등등 거의 전 세계의 음식이 다 모여있어서 좋았다. 그것이 내가 이곳을 자취방으로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기도 했었다. 선택지가 많아서 행복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결정하는 것도 또한 일이 되었다. 결국에 자주 시키는 음식의 종류는 아무리 이태원이라고 한들 세 가지 정도로 모이는 듯하다. 이미 다 먹어본 맛이라는 생각에 거의 없던 식욕이 뚝하고 떨어졌다.

 

‘오늘같이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누가 나 대신 밥 좀 차려줬으면 좋겠다...'


   문득 엄마가 해준 밥상이 그리워졌다. 내 머릿속으로 상상해본다.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을.

 

‘고슬고슬한 현미밥에 방금 끓인 따끈한 찌개와 잣이 들어간 멸치볶음. 메추리 알 들어간 장조림, 명란젓을 넣은 계란말이, 할머니의 특제소스가 들어간 간장게장, 그리고...그리고 또…’

 

   결국, 고민만 하다 아무것도 고르지 못한 채로 집까지 와버렸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자취방은 고요했다. 족쇄 같았던 구두를 던져버리듯 벗었다. 깜깜했던 방에 불부터 켜고 나니 방바닥이 너무 차가웠다. 두 발이 오므라들었다. 서둘러 난방 스위치를 켰다. 옷을 편하게 갈아입고 화장을 지우고 나니 배에서 꼬르륵하고 소리가 났다.

  냉장고를 시답지 않게 한번 열어봤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별것 없다. 맥주 몇 캔과 물 한 통, 닭가슴살 몇 팩과 마스크팩 몇 개, 물렁물렁한 파와 달걀 한 개가 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냉장고 상태. 최근에 면접 준비한다고 소홀했던 탓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하루라도 돈 안 쓰는 날이 없고, 심지어 숨 쉴 때도 돈이 나간다. 핸드폰 알람 음이 신세한탄 같은 내 사색을 깨웠다. 문자가 한 통 와 있다.


‘면접 봤던 회사에서 벌써 연락이 왔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아니다. 엄마에게서 온 문자였다.

 

'오늘 면접 본다고 말했었지. 잘 봤어?

이번에는 좀 붙었으면 좋겠다.

너 때문에 엄마가 더 맘고생이야.

그나저나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잘 챙겨 먹고 다녀.

그래야 기운 차리고 면접도 잘 보지.

그나저나 이번 주에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다고 했어. 오랜만에 할머니랑 같이 얼굴 보고 밥 좀 먹자.

시간 날 것 같으면 연락 남겨줘. 딸'

 

‘불합격 통지 문자인 줄 알고 괜히 긴장했네.’

 

   엄마의 문자를 받고 잠깐 멈춰 섰다. 뭐라고 답장을 해야 좋을까 싶었다. 또 합격하지 못할 것 같다고 솔직하게 문자를 보내야 하나 아니면 면접 얘길랑 말도 꺼내지 말고 애써 밝은 척을 해야 할까. 둘 중에 어떤 답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별다르게 쓸 말이 없어서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놓는다. 다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찬장에서 냄비를 꺼냈다. 물을 붓고 냉장고 안에 있던 상태가 오늘내일하는 파도 좀 썰어 넣는다. 라면 사리를 넣고 팔팔 끓이다가 마지막에 하나 남은 달걀을 탁 깨서 넣었다. 앉은뱅이책상을 펴고 더는 읽지 않는 전공 책을 깔았다. 그 위에 냄비를 얹고,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켰다.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며 배를 채웠다. 배가 다 차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오늘 종일 긴장을 한 탓일 것이다. 진이 다 빠져버려 설거지도 미뤄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적막을 뚫고 알람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눈을 한쪽만 뜨고 창문 밖을 살폈다. 아직도 어둑어둑하다.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그래서 아침인지 밤인지를 모르겠다. 올려다보니 시계가 오전 7시를 가리켰다.


‘일어나야지…’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제일 먼저 핸드폰부터 본다. 날씨를 보는데 올가을 첫 한파 특보라고 한다. 패딩을 꺼내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튜브와 SNS를 타고 다니다가 문자가 왔다. 합격통지 문자일까 싶어서 얼른 들어가 봤다. 광고 문자다. 짜증이 입안에 맴돌다 문득 어제 왔던 엄마의 문자가 눈에 밟힌다. 무슨 말이든 답은 해야겠다 싶어서 오늘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찾아뵙겠다고 간단히 답장을 넣었다. 세수하고 아르바이트를 갈 준비를 한다. 플리스에 도톰한 패딩조끼를 입고 집을 나섰다.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 쌀쌀한 날씨다. 가을은 금방 스치듯이 지나가고 벌써 겨울이 코앞에 온 듯하다.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도착했다. 나랑 같은 시간대에 일하는 친구인 하은이가 먼저 와있다. 나이도 같아서 금방 친해졌었던 친구다. 그 친구도 취준생이기에 정보를 쏠쏠히 나누고 있다. 빠르게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계산대 앞에 섰다. 하은이가 웃는 얼굴로 다가와서 이번 면접에 관해 물었다.


  “여어~ 면접은 잘 봤냐?”

  “정말 망했어. 이번에도 떨어질 듯싶다.”

  “왜? 잘 못했어? 준비 많이 했잖아.”

  “준비한 것에 반의반도 못 보여줬어. 아니. 잘 모르는 질문이 나와서… 으아…”

  “아 진짜? 면접관이 빡빡했나 보네. 괜찮아. 잘했어!"

  “오늘 끝나고 본가 들어가 보기로 했는데, 엄마랑 얼굴 마주 보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싶다.”

  “아. 좀 그렇긴 하다. 나도 똑같아. 그래서 나는 본가 잘 안 들어가잖아. 흐흐”

  “너는 2년째 안 들어가고 있잖아. 너희 어머니가 실종신고 안 하시니?"

  “무슨 소리야. 매일 사랑한다고 카톡 하는데?"

  “어휴 넉살은. 빵이나 진열하자!”

 

   우리 둘의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손님이 들어왔다. 정신없이 빵을 포장하고 계산을 해드린 후에 한숨 돌렸다. 나는 제과점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빵을 좋아하진 않는다. 주면 먹기는 잘 먹지만 한국 사람 식성 어디 안 간다고 빵이랑 우유를 같이 먹으면 속부터 느끼해진다. 일하는 동안 빵 냄새를 몇 시간이고 맡는 것은 꽤나 고역이다. 그러다 보니 일할 때마다 김치 하나 푹 찢어서 입에 넣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랑 같이 김장을 하곤 했었다. 아니, 같이 한다기보다 옆에서 보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할머니는 손이 컸다. 그래서 항상 가장 큰 고무대야에 김장을 했었다. 그때 나는 옆에서 할머니가 만드는 모습을 대체로 바라보다가 자잘한 일들을 도왔다. 소스를 젓는다거나 소쿠리에 있는 채소를 넣어주는 일 말이다. 그러다 할머니가 돌돌 말아서 한입 먹여주면 ‘조금 싱겁다' 혹은 ‘딱 알맞다’라고 말하는 기미 상궁 역할을 했었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행사인 김장에 나의 미각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내가 간을 딱 맞출 줄 안다고 할머니는 항상 나를 치켜세워주곤 했다. 할머니의 칭찬에 나는 한 것도 없으면서 괜스레 으쓱했었다.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고, 나에에 김장은 할머니와 함께하는 행복한 일이었다. 김장이 손도 많이 가고 엄청난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한참 크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던 어렸을 때의 나는 항상 할머니께 이번 연도엔 김장 안 하냐고 보챘었다. 그저 할머니랑 같이 한다는 사실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를 항상 이뻐해 주던 할머니를 오늘 본다는 생각에 기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 냄새와 같이 피어올랐다. 그러다가 띵동 하는 소리에 생각에서 깼다. 손님이 들어왔다. 빵 냄새를 너무 맡은 탓인지 아니면 손님이 갑자기 많아진 탓인지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오는 길. 타는 듯한 갈증처럼 할머니가 만든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졌다.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겉옷을 벗는데 빵 냄새가 가득했다. 한 곳으로 치워두고 섬유탈취제를 뿌려놓았다. 본가로 바로 출발하려고 옷만 갈아입고 그냥 나가려 했는데, 신발장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봐버렸다. 일하느라 진을 빼서 이마에 착 붙은 앞머리는 불썽사나웠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완벽하게 내려앉아있었다. 한숨이 절로 났다. 이 꼴로 집에 갔다간 엄마한테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을 것이 분명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앞머리를 클렌징 폼으로 대충 헹구어주고 드라이를 해줬다. 이왕 하는 김에 화장으로 다크서클도 좀 가려줬다.

 

‘이제야 사람 같네’

편한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자취방을 나섰다.

 

    본가에 도착했더니 방금 전에 한 밥 냄새가 가득했다. 엄마는 음식 준비로 한창이어서 눈 맞춤과 고개 끄떡임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할머니가 소파에서 TV를 보며 앉아있다가 아이 같은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겨줬다. 할머니 얼굴을 보니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얼른 신발을 벗고 날아가듯 할머니께 가서 안겼다.


“할머니이이…보고싶었어..."


   갑자기 참아왔던 울음이 댐 터지듯 터져버렸다. 이번 연도 잘 버티고 잘 싸워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그동안 혼자서 꾹꾹 내리누른 감정들이 두서없이 쏟아져 나왔다.


“으에엥 엉엉… 나 진짜 열심히 했는데… 나 맨날 떨어져. 맨날."

“아이고 우리 손녀딸. 할미한테 와서 안겨. 누가 우리 똥강아지 울렸어! 할미 앞으로 다 데려와. 할미가 아주 혼을 내줄게. 그 사람들은 우리 민하가 이렇게 성품이 바르고 착한 줄을 몰라. 우리 손주 안 뽑으면 그 사람들 손해지! 뭐!”

 

   할머니의 따뜻한 품과 가볍게 두드리는 토닥거림에 울먹거림과 함께 흔들리던 내 어깨가 잦아들었다. 조금은 남아있는 나의 흐느낌이 느껴졌는지 할머니는 나를 안고 있는 상태로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강아지. 할머니랑 손잡고 다닐 때 기억나? 자기가 더 배고플 텐데도 할머니 배에서 쪼르륵 소리 나니까 집 앞에 냉면집으로 끌고 갔잖아. 거기서 함흥냉면 하나 시켜놓고 둘이서 나눠 먹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래. 둘이서 그때 맛있게 먹었었지? 우리 손녀딸은 마음도 이뻐서 할머니 그렇게 챙겨주고 그랬었잖아. 할미 아직도 이렇게 기억한다?”

 

   그랬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 있는 고향을 떠나 대동강을 헤엄쳐 와서 서울에 터를 잡았었다. 아들 셋 딸 둘인 오형제를 키워내느라 바빠 자신의 꿈을 키우지 못했던 할머니는 엄마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엄마의 대학원을 독려했었다. 일과 대학원,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바쁘던 엄마를 대신해서 할머니가 어린 나를 키웠었다. 그때 이 골목 저 골목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다녔었던 것이 기억난다. 찜질방에 가서 할머니 친구분들께 재롱도 부리고 간식도 얻어먹었었다. 또 할머니랑은 자주 장을 보러 가곤 했었는데, 마트를 가면 계산대 앞에는 항상 어린 나를 유혹하는 사탕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일부러 외면하곤 했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할머니께 난 괜찮다고 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할머니랑 장을 보고 집에 오는 길이였다. 할머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놀라서 둘이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 표정이 민망함으로 일그러졌다. 그때 우리 집 아파트 옆에는 '숯불갈비 함흥냉면' 집이 있었다. 할머니가 배고픈 것을 알아버린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막무가내로 냉면집으로 끌고 갔다. 사탕 사달라고도 떼를 안 쓰던 내가 이번에는 고집 좀 피워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당시 할머니는 엄마한테서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눈치가 보이셨는지 필수 생활비 말고 다른 돈은 일절 쓰지 않으셨다. 그래서 집 밖에서의 우리 둘의 외식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냉면집에 들어간 것을 내가 떼쓴 것으로 하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추후에 엄마가 자초지종을 물어보더라도 내 탓이 될 거라는 순간의 판단이었다. 그때 할머니는 여섯 살짜리가 자기를 챙겨주는 마음에 놀라고 또한 감동했었던 것 같다. 팔순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계속 반복해서 그때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할머니. 나 잘하고 있는 거겠지?”

“그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할머니는 알아. 우리 민하가 얼마나 착하고 성실한 아이인지.”

“이잉... 나 또 울어. 근데 너무 좋다. 할머니 냄새."

“밥 다 됐다. 엄마 이리와요. 박민하! 청승 그만 떨고 이리 와서 밥이나 먹어!”

 

   엄마가 식탁으로 나와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는 나를 품에서 떼어내고는 눈을 맞추고 웃어 보였다. 나도 눈물을 쓱쓱 닦고 벌건 눈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다 같이 밥상에 앉았다. 고슬고슬한 현미밥과 보글보글 방금 끓인 찌개, 잣이 들어간 멸치볶음과 메추리 알이 퐁당 빠져있는 장조림, 명란젓이 들어있는 계란말이, 그리고 할머니의 특제소스로 만든 간장게장까지. 내가 어제 상상했던 딱 그대로의 밥상. 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우와아. 정말 잘 먹겠습니다!!!”

“어휴 딸.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난다?”

“우리 강아지~ 먹는 것도 복스럽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반찬 중에 할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가 보였다. 무릎도 안 좋을 텐데 이번 연도에도 김치를 담그셨나 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밥을 한 숟갈 떠서 그 위에 김치를 쫙 찍어서 얹어 먹었다. 그다음 숟갈에는 멸치볶음, 그다음에는 찌개 국물 한 숟갈 푹 퍼서 먹는다. 찌개 숟갈에 담긴 두부를 밥에 으깨서 한입. 찌개 안에 들어있는 뭉근한 호박과 같이 또 한입. 이번에는 명란 계란말이를 집어서 입에 한가득 넣는다. 명란이 짭조름하니 반찬으로 너무 알맞다. 그리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망의 간장게장을 집었다. 한입 크게 앙 하고 몸통 살을 쭉 빨아먹는다. 달짝지근하면서 짜지 않은 소스에 청양고추의 톡 쏘는 맛까지 정말 일품이다.

 

‘아 정말 행복하다.’


   감히 행복이라고 할만한 식사였다. 식사를 거하게 마친 우리 셋은 TV 앞에 도란도란 앉았다. 후식으로 내가 과일을 깎았다. 할머니 입에 한조각 넣어드리고, 어머니 입에 한조각 넣어드렸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셋은 쉴 새 없이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핸드폰 알람 음이 울렸다.

 

띠링---

문자가 왔다. 어제 봤던 면접 결과가 분명했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불합격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저희와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안 될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입에 물고 있던 과일 맛이 순간 써졌다. 핸드폰 알람 음이 또 울렸다.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하은이가 보낸 카카오톡이었다.

 

‘야. 면접 결과 나왔냐?! 결과가 좋든 안 좋든 신경 쓰지 말자. 왜냐하면? 나도 떨어졌거든! 지금 이렇게 어려운 게 뭐 우리 탓이냐? 우리 언젠가 될 거니까. 아니. 될 때까지 할 거잖아? 털고 다시 하면 돼. 어떠냐. 이 언니의 말씀이. 기운이 팍팍 나지? 내가 이번에 찐 맛집 찾아놨으니까 같이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 오키?'

 

웃음이 피식하고 새어 나왔다.

‘그래 그러자. 오키!'라고 답장을 했다.


   옆에서 웃고 있는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옆에 엄마를 쳐다보았다. 함께 웃고 있는 우리 셋. 이대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했다.




    '식구’라는 말이 있다. 식구라는 뜻은 '한 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다. 또한 한자어를 직역하면 '먹는 입'일 것이다. 밥상에 오순도순 모여 오늘 하루의 일과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다 같이 밥을 먹는 것이 가족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목표에만 집중하고 달려가던 시간 동안 내 사전에 ‘식구’는 없었다. 같이 밥 먹으면서 오늘 일을 대화 나눌 사람도, 맛있는 반찬이 가득한 밥상도 없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며 배달음식은 더욱 주목을 받았고, 배달 앱을 많이 이용하는 사람 중에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밥을 먹으며 한번 느꼈다. 그리고 친구의 카카오톡에서 또 한 번 느꼈다. 사람은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진리 말이다. 사람은 함께 서로의 마음의 한 부분을 나눠주며 살아야 한다. 친구와 맛있는 것을 먹고 급속도로 친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맛있는 것을 또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면서 뿌듯해했던 그 행복한 감정들처럼 말이다. '식구'란 그렇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가장 어두운 터널 같은 시기를 보내는 취준생들에게는 '식구'가 있을까? 만약 주위에 당장 없다면 이렇게 문자를 남기고 싶다.

 

‘많이 힘드시죠? 밥은 잘 먹고 다니시나요?

제가 잘 아는 맛집이 하나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저랑 같이 밥 한번 먹어요.

빈말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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