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프링 May 28. 2022

2. 나 로마에 반한 거 같아

한샘이 한샘에게


 한샘에게          

 

 보내준 답장 잘 받았어. 가끔 친구들과 엽서나 카드를 주고받은 적은 있지만 학창 시절 이후로 이렇게 긴 편지를 누군가와 주고받은 적이 있었던가 싶어. 게다가 여행 중에 받는 답장이라니.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봉투를 열어보는 일이 아니더라도 글이 올라왔다는 알람이 오고 링크를 누르고 느린 인터넷 속도 때문에 화면이 뜨고 첫 문장을 읽기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이었어.

 언니는 편지를 주고받기로 한 게 잘못 생각한 거라 했지만 내 여행 얘기만 들으면 별 의미 없지. 비록 나는 계속 옮겨 다니는 중이지만 나의 모든 것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고 여름이 끝날 무렵 다시 돌아갈 테니 연결의 끈을 놓을 수가 없으니까 말야. 그렇기에 그곳에서 계속되는 언니의 평범한 일상이 궁금해. 특별 이벤트만이 자극이고 흥미로운 것만은 아닐 테니까. 그래서 그럴까 며칠 째 자꾸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 <시차>의 첫 소절을 나도 모르게 계속 흥얼거리고 있는 중이야. (몇 날 며칠을 이 부분만 흥얼대서 질려버렸건만 멈출 수가 없네) "지금쯤 그대는 몇 시에 사는지~ " 하는 이 구절을. 오늘 책방에선 어떤 책이 팔렸는지, 어떤 새로운 손님을 만났는지, 언니가 오늘 읽은 책은 뭔지, 오늘은 무슨 나물과 밥을 먹었을지, 맥주는 마셨는지.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이잖아 :) 그러니 있는 각자의 자리에서의 날들을 서로에게 전하는 게 의미 있는 걸 꺼야. 아이들이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니 너무 잘 된 일이다. 책방은 다시 일요일만 쉬는 걸로 변경했구나. 너무 나와 있어야 하는 날이 많은 건 아니고? 아이들 운동 선생님이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 말에 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난 2년 간의 이야기들을 했다는 게 나는 언니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좋은 신호로 생각되네.

 그러고 보니 한국은 곧 선거라 정말 유세로 시끄럽겠다. 정말 화만 돋우고 일상에 방해가 되는 그런 효과 없는 유세는 이제 그만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그런 선거 운동이 계속될지. 여기서도 계속 문자가 와서 보면 선거 관련 스팸 문자고 심지어는 여론조사 전화까지 걸려 왔었어. 관심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변함없는 일상은 궁금하지만 뉴스는 일부러 관심을 끄고 있는 중이야. 자연스레 뉴스를 멀리하게 되는 것도 있고 언제 이래 보겠냐는 듯 열흘도 넘게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 페이지에 접속하지 않고 있는데 약간은 불안하면서도 그동안 뉴스 보며 스트레스받던 게 사라져서 좋네. 잠시 그 부분의 전원은 꺼둬야겠어.

     

 지금 이 편지는 로마에서 5일을 보내고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쓰고 있는 중이야. 몰랐는데 떼르미니 역으로 와보니 내가 피렌체까지 타고 갈 기차가 나폴리에서 출발해 피렌체를 거쳐 토리노로 가는 기차였더라고.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레누가 나폴리에서 피렌체로 갈 때 이 기차를 타고 가진 않았을까를 혼자 상상하며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렸어.

 애초 일 년에서 겨우 5일로 쪼그라든 로마였기에 아쉬움이 크기도 했지만 있는 잠시 있는 동안 로마에 감탄하고 반하며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 아는 것처럼 그곳에 사는 것과 잠시 여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잖아. 짧지만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좋고 아름다운 것만 보며 즐길 수 있었으니 좋지 않을 이유가 없지. 예전에는 외국의 어디 어디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곧 잘했었는데 이제는 ‘사는 것보단 여행이 좋은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돼. 살면서 겪게 될 여러 생각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이미 귀찮고 두려운 마음이 들거든. 내 안에 에너지가 많이 줄어서이기도 하고, 복잡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생활이야말로 최상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벌써부터 알던 단어도 말도 금방금방 떠오르지 않는 괴로움까지 합쳐져 있는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더라고. 하지만 오랜만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어서 그랬을까 뉴욕에서 로마로 넘어오면서부터는 계속 평소보다 흥분 상태였던 거 같아. 지난 일 년 간 가장 많이 걸었고 평균 걸음 수가 평소의 네 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스마트폰이 알려주고 있는데도, 발에 물집이 잡혔는데도 아직은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고 있으니 말야.  


 로마에 도착해 처음 시내로 들어왔을 때 현대식 건물이란 건 단 하나도 없이 오래된 색색의 건물들과 좁은 골목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고대 도시의 흔적이 꽉 채우고 있는 모습에 놀라면서 처음 떠올랐던 이미지는 다름 아닌 27년 전 로마 한복판에 도착했던 어린 정한샘의 모습이었어. 지금이야 세계 어디든 가기도 전에도 그곳의 모습을 속속들이 다 보고 갈 수 있는 시절이지만 그때만 해도 거의 모든 곳들이 가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던 때였으니 열여섯의 아이는 이 아름답지만 이질적인 모습에 얼마나 놀랐을까, 혹은 두려웠을까. 그리고 혹시 이곳을 아름답다거나 매혹적이라고 느끼게 된 건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 흐른 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로마에 첫 발을 디딘 날 로마에 대한 언니의 인상이 궁금해져. 어떤 느낌, 어떤 기분이었을지. 지난 세기부터 이번 세기 초까지 로마 속에서 살아온 언니는 나와는 얼마나 다른 삶과 다른 경험,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온 다른 사람인지가 이곳에 서보니 비로소 피부로 확 와닿는 느낌이네. 그런 가운데서도 교집합을 찾을 수 있는 우리가 신기하기도 하고.

 

 로마 신화, 로마 제국, 기독교의 로마에 대한 이야기들 때문이었을지 나는 로마를 언제나 유럽의 다른 도시들보다 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왔던 거 같아. 유럽의 많은 곳들을 다녀보는 동안에도 로마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무게 때문에 ‘여기는 특별히 준비를 하고 가야 해 ‘ 이러면서 일부러 로마를 나중에니 가볼 곳으로 미뤄뒀던 거 같기도 하고 말야. 결국 아무 공부도 하지 못하고 오게 됐지만 와서는 로마를 계속 미뤄뒀던 걸 후회했어. 아니 이제라도 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낫겠지. 로마에 대한 공부는 이제부터!

 로마는 거의 변한 게 없다는 말에 로마에 오면서 챙겨 왔던 건 가이드 북 대신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과 가와시마 히데아키라는 일본 출신 이탈리아 문학가가 1960년대에 쓴 <로마 산책>이었어. 호텔에서 틈틈이 읽으려고 했는데 호텔에만 들어오면 자버린 탓에 펴보지도 못하고 로마 여행을 마무리해버렸네. 일단 로마는 무척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어. 보이는 것들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시간이 겹겹이 쌓여있는 곳이니 그 아득한 시간을 떠올려보려고 할 때마다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더라고. 고대 로마 시대의 신들을 위해 만든 신전들,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에 만들어 놓은 수많은 교회들과 관련 예술 작품들을 보며 21세기의 중반을 사는 나는 신이 아닌 이 모든 걸 이루어낸 인간을 계속 떠올리게 되더라. 아름답고도 압도적인 이 모든 것들을 사람이 해낸 거라는 걸 생각하면 경이감이 들면서도 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걸 가능하게 만든 권력들, 돌을 옮기고 세웠을 노예들 등등등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야. 이 땅에서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일일까. 하지만 저 골목을 돌아 나가면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기대하며 걷게 되고, 골목 끝에서 ‘짜잔' 하고 나타나는 제각기 다른 풍경에 매번 놀라면서 언니 말대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상한 매력을 가진 이 도시에 반해버린 것 같아. 좁은 골목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 모습까지도 어쩜. 어떤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건축물, 광장, 가게들마다 새겨져 있을 온갖 인물들과 수많은 이야기들 생각하니 로마에 욕심이 나더라고. 오래됐지만 노쇠하지 않았고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 아무데서 아무거나 먹는데도 다 맛있는 도시, 와인은 또 왜 이렇게 싸고 맛있어서 오전부터 나를 유혹하는 건지, 커피는 또 어떻고. 이러니 내가 반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로마에 도착해서 로마를 떠날 때까지 정말 너무나 모든 일이 순조로왔는데 딱 하나 그냥 여행 에피소드로 남겨놓을 정도의 일이 있었어. 너무 더워 호텔까지 걸어갈 수 없는 지경이라 나랑 하영이가 택시를 하나 잡아 탔는데 호텔까지 미터기에 딱 십 유로가 찍혔기에 내릴 때 “cento” 이러면서 십 유로짜리 지폐 하나를 깔끔하게 건네었으나 기사 할아버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태리어로 계속 뭐라 뭐라 하시며 내가 1유로씩 동전으로 5유로를 더 줄 때까지 우리는 택시에서 내릴 수 없었다는 거. 그 뭐라 뭐라 했던 말은 대체 뭐였을까. 영원히 알 수 없겠지?     

 로마는 변하는 게 거의 없다고 했으니 내가 로마에 있는 동안 곳곳에서 맡을 수 있었던 재스민향이 언니의 그 시절 오월에도 가득했을지. 앞으로 어디에선가 진한 재스민 향을 맡게 된다면 난 2022년 5월 나의 첫 로마를 떠올리게 될 것 같아.

 

 기차에서 편지를 다 쓸 수 없어서 피렌체의 호텔에서 나머지 부분을 쓰는 중이야. 1881년에 문을 연 나보다 딱 99살 더 많은 호텔의 3층에서. ‘전망 좋은 방’을 배정받지도 못했고, 자신의 ‘전망 좋은 방’과 바꿔주겠다는 사람도 없었지만 피렌체도 참 좋네. 루시는 베데커 여행 안내서를 펼쳐 산타 크로체 교회를 찾았지만 나에겐 베데커 대신 구글 맵을 봐가며 오늘부터는 이곳을 잘 탐험해보도록 할게.     

 

 뉴욕으로 돌아가면  주소를 알려줄게. 그곳에서 권누리 시인의 시집을 받으면 너무 기쁠  같아. 지난 편지에 옮겨 적어   구절만 해도 너무 좋다.  여름에 주머니에 꽂고 나가 센트럴 파크의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읽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해져.


                                                                                                                                                                                                                                                                      5월 28일

피렌체에서 한샘이가.

                                                                                         

매거진의 이전글 1.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