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생각이 났다. 10년도 더 전에 썼던 첫 직장의 입사지원서, 스물셋의 봄에 채워 넣었던 그 네모칸에 담긴 나의 설익은 꿈이.
지금도 종종 떠올리는 논어의 구절 '어떤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를 인용해서 나야말로 이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입사 후 포부를 묻는 질문에는 5년 내로 회사 내 네트워크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관계가 전혀 없는 인물과도 6단계만 거치면 연결된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쓰인 할리우드 배우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을 언급했었는데, 그의 작품이라고는 단 하나도 본 적 없지만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했던 첫 회사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넣은 말이었다.
꽤 긴 시간과 우여곡절이 있었으나(이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따로 다루고) 첫 회사에서 나는 공자가 말한 '즐기는' 일을 찾았다. 하지만 케빈 베이컨까지 언급하며 내세운 포부를 그곳에 머무는 7년 7개월 동안은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 이 두 번째 직장에서는 누구와도 6단계 안에 연결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첫 직장에 머물렀던 시간의 딱 절반 정도를 보냈지만, 보폭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고 만남과 사귐의 속도도 빨랐다. 내가 자발적으로 걷는 걸음 반, 회사에서 반강제로 만들어낸 무빙워크가 반이었겠지만.
이 회사에 머무는 3년 반 동안에는 매년 한 번 이상 이직을 진지하게 고려하던 시기가 있었다. 각각의 순간에는 그 이유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하나의 흐름이다. 일을 즐기기는커녕, 내가 좋아하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때로 어떤 일들은 '아는' 범위도 벗어나서, 난 고작 '그 일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시간과 스트레스를 교환해야 했다.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짧은 기간에 쌓아온 믿음과 애정의 밀도가 높았지만 결정을 망설이지 않았다. 우연히, 10여 년 전의 이력서를 떠올리고서야 갑자기 지난 몇 년간 내가 타고 있던 이 물결의 방향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매년 나와의 약속 같은 목표를 세우는 것은 조금씩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케빈 베이컨처럼 많은 사람과 이어질 수 있는 네트워크 허브가 되고 싶은 건, 단순히 휴대폰 연락처가 빼곡한 사람이 아니라,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 내가 즐길 수 있는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 꿈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싶다.
곧 함께할 세 번째 회사는 스타트업이고, 그간 경험한 것과 전혀 다른 규모와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과 직접 만날 수 있을 테니 아마 케빈 베이컨은 당분간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정체했던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좋은 기억과 사람만 남긴 채 돌아보지 않겠다. 경험이 가르쳐 준 완급조절로 이전의 출발선에서보다 주행과 가속이 쉬울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어렴풋이 짐작하는 첫 코너와 나의 코너링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