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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n 13. 2024

론다에서의 하룻밤


대부분의 방문객은 론다 Ronda 에 머무르기보단, 당일치기로 방문해 누에보 다리 Puente Nuevo 를 배경으로 인증숏만 남기고 돌아간다. 식사 한 끼, 커피 한잔조차 하지 않고 이동에 걸린 시간보다 더 적은 시간만을 한 도시에 할애하는 것이다. 과연 론다를 여행한 것일까. 진정한 론다의 매력을 경험하기에 반나절도 너무도 짧다. 적어도 1박은 머무르며 절벽 위 도시의 아름다운 야경과 상쾌한 아침 공기는 맞봐야 당당히 론다에 가봤다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론다 파라도르 Paradores 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작은 도시인만큼 터미널은 도보로 이동 가능하였고, 출발시간까진 여유가 있었다. 떠남이 아쉬운 마음에 일부러 더 천천히 걸으며, 괜히 여기저기 들어가 보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살짝 화장실 신호가 왔지만 아직은 참을 만했고, 버스에 오르기 직전에 가면 되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다 도착한 터미널, 한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전날 도착했을 때만 해도 여느 조용한 시골 마을처럼 아주 작고 고요했다. 과장하자면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달까. 그러나 지금은 건물 밖에서부터 북적북적하다. 아직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화장실로 향하는 발걸음과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아,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 진다.’




맙소사!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아니다. 밖에서부터 북적북적하던 행렬은 건물 안에서도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 길의 끝엔 화장실 입구가 있었다. 알고 보니 중국 단체 관광객을 실은 버스 여러 대가 방금 론다에 도착했고, 그들이 전부 화장실을 가려 줄을 선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주위엔 화장실이 있을 만한 다른 건물이 없었고, 버스 안에서 2시간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 급했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버스를 포기하고 지금이라도 다시 호텔로 뛰어갈 것이냐, 아니면…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줄을 헤치고 일단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칸도 2개밖에 없는 걸 보니 더욱 절망스러웠다. 다급한 마음에 맨 앞에 서있는 중국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아주 간절한 손짓발짓과 최대한 급하고 불쌍한 표정으로 몸의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중국어를 모르고 그녀는 영어를 모르니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이제 곧 버스가 떠나는데, 화장실이 너무 급해요. 먼저 사용해도 될까요?”


대충 이런 의미이다. 다행히 나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먼저 들어가라며 흔쾌히 손짓해 준다. 정말 눈물 날 듯 고마운 상황에서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그녀에게 나는 유일하게 아는 중국어 “씨에씨에(고맙습니다)”를 연신 내뱉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중국 아주머니의 관대함으로 출발 3분 전 나는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이로써 하나 더 배웠다. 만국 공통 어머니들에겐 따뜻한 정이 있으며, 바디랭귀지는 언제 어디서나 옳다는 사실을.


간절하면 통한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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