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시내에서 버스로 30분 정도만 가면 지상의 낙원이자 서퍼들의 파라다이스인 본다이 비치 Bondi Beach가 있다. 호주를 대표하는 이 해변은 세계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시드니 여행을 꿈꿀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당연히 놓칠 수 없는 여행자의 버킷리스트이다.
‘하루는 온전히 본다이 비치에 받치리라.’
이 날을 기다리며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그런데 웬걸?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이 심상치 않다. 그래도 계획을 바꾸고 싶진 않았다. 오늘이 아니면 시드니까지 와서 본다이 비치를 못 보고 돌아가는 불운한 여행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에펠탑 없는 파리, 타임스퀘어 없는 뉴욕이나 다름없달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상태 그대로 유지라도 해달라는 나의 기도는 먹히지 않았고, 본다이 비치에 도착하자마자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TV속 푸른 바다와 황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변을 상상했으나, 결국 나를 반긴 건 우중충한 하늘과 거친 파도, 그리고 장대비였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본다이 비치의 명물, ‘아이스버그 lcebergs’를 향해 뛰었다. 차라도 마시며 몸을 녹일 요량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종의 문화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바다와 맞닿은 야외수영장에서 거센 파도와 밀려오는 바닷물, 그리고 빗물이 뒤섞인 가운데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으슬으슬한 탓에 나는 따뜻한 카푸치노를 손에 쥐고 앉았다. 그러나 창문 밖 또 다른 세상에선 작은 수영복 하나만 걸친 채 비바람을 가르며 파도와 싸우는 것이다. 하늘의 상태와 날씨는 결코 수영을 할 만한 것이 아니었기에, 위에서 내려다본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악과 충격의 콜라보였다.
이쯤에서 비 오는 날 본다이 비치에 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란 자만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세상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쫓는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 참 많고도 많았던 것이다. 그들에게서 용기를 얻어 다시금 밖으로 나서본다.
우산도 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고 있지만 이 역시 나뿐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산을 펼치면 뒤집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날이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방문객들로 가득 찬 식당 안, 차가운 화이트 와인과 갓 튀겨 따뜻한 피시 앤 칩스, 비구름으로 뒤덮인 본다이 비치를 앞에 두고 앉아 창문에 닿은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운이 좋은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분명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원망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이런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란 생각이 들며 역시 난 여행운이 좋다는 결론을 내려본다.
내리는 비가 더는 밉지 않으며 다시 돌아갈 이유가 생겨 다음이 기다려진다. 햇살에 반짝거리는 새파란 본다이 비치를 보는 그날까지!
© 2024. by JI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