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장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를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어김없이 런던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 도시도 런던, 살고 싶은 도시도 런던이었다. 오죽하며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도 받았었다. 한국에서의 취업으로 실행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만큼 내게 런던은 꽤 오랜 기간 꿈의 도시였다. 그러나 이런저런 연유로 인해 첫 번째 해외 여행지도,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 Top5도, 가장 좋아하는 도시도 더는 런던이 아니다.
멋들어진 브리티쉬 억양과 젠틀한 영국 신사, 가지각색 뮤지엄과 갤러리,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셰익스피어와 해리포터의 흔적, 고풍스러운 호텔에서 즐기는 애프터눈 티, 펍 Pub 에서 맛보는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켓의 다양한 스트리트 푸드와 아기자기한 상점들, 버킹엄 궁전 앞 근위병 교대식, 곳곳에서 펼쳐지는 기념 퍼레이드, 빨간색 2층 버스와 전화박스, 빅벤과 타워 브리지, 그리고 런던 아이까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내 머릿속 런던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름에 맞이한 차가운 공기와 비바람, 한 끼 식사 1인 5만 원은 기본인 살인적인 물가, 젠틀한 영국 신사는커녕 자꾸 따라와 곤란하게 하던 할아버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를 보러 갔던 웨스트엔드 어느 극장 화장실에 떨어뜨려 고장 난 카메라,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던 음식들.
그리고 근 2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 저녁 비행이기에 출발시간까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고 간단히 쇼핑도 할 겸 겸사겸사 소호 Soho 로 향했다. 지난번 방문에서 맛있게 먹었던 스테이크 가게가 생각 나서다. 그러나 일부러 찾아간 가게는 양도 가격도 내용물도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급격한 물가상승과 팍팍한 삶의 흔적인 것 같아 다소 씁쓸한 맛이다. 좋았던 기억마저 바래질까 괜히 왔다는 생각만 들었다.
배를 채우고 나와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주위가 온통 사람으로 꽉 차서 한 발짝 내딛는 것도 어려웠다. 이유를 알아보니 런던 시내에서 게이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때문에 도로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사방이 막히고, 수많은 인파의 행렬이 넘실대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겐 즐거운 축제의 장이자 신기한 구경거리이겠지만, 한시바삐 짐을 챙겨 공항에 가야 하는지라 나에게 이 상황은 결코 달갑지만은 않았다. 이들을 뚫고 지나가야만 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정도다.
그렇게 멀리멀리 돌아 간신히 그리고 아주 어렵게 도착한 공항에서 맞이한 3시간 연착 소식! 끝까지 쉬이 놓아주지 않던 내가 경험한 런던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 나는 런던을 두 번 방문했다. 첫 번째는 런던을 목적지로 둔 여행이다. 두 번째는 경유지로 스탑오버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유명하다는 곳은 다 가보고 먹을 것도 다 먹어보며 남들 하는 건 다 해봤다. 그러나 설렘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와 비슷한 익숙함으로 다가왔고, 부정적 의미로 서울과 가장 비슷한 느낌을 받은 곳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언젠간 다시 찾을 그 도시를 그리며 세 번째 방문을 기약해 본다.
영원한 나의 꿈의 도시, 런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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