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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un 01. 2024

전원 끄기의 기술


처음 여행을 떠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오는 나름의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휴대폰을 로밍하지도, 해외 유심이나 포켓와이파이를 사용하지도 않는 것이다. 심지어 한 달을 지내면서도 오로지 현지 와이파이에만 의존하며 생활했다. 일부러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해보니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좋았다.


쉴 새 없이 울리는 단톡방 메시지, 장문의 광고 문자, 의미 없는 SNS 메신저 등.


잠시라도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떠난 여행지에서마저 방해받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했던 선택이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자리 잡아,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차단하고 와이파이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온전히 그 시간, 그 순간에만 집중한다. 거리의 사람을 구경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아무 걱정 없이 그저 그렇게 말이다. (물론 와이파이가 잡힐 때는 잠시 딴짓을 하긴 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 중 내게 중요한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1. 시계 (with 알람)

2. 카메라

3. 검색

4. 연락


이다. 예약해 놓은 공연을 보거나 기차, 비행기 등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시계가 가장 중요하고, 사진은 남겨야 하기에 카메라가 그다음으로 중요하고, 여행정보를 찾아봐야 하니깐 인터넷 검색도 필요한데, 연락은 ‘굳이’라는 생각이다. 오는 전화는 받지 않으며 메시지는 와이파이가 연결될 때만 확인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조금은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어느 새벽, 전화가 울렸다. 한국이었다면 잠시 설렐 수도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건 어김없이 스팸이라는 것을. 학창 시절 우리 반 최초 010으로 시작하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나는 같은 번호를 20년 넘게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세월만큼 각종 광고 전화가 넘실대며 차단을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받지 않을 전화의 진동이 어두운 객실을 가득 메우고 나는 휴대폰을 들어 전원을 껐다. ‘이봐, 여긴 새벽이라고!’


그 후로도 알람에 맞춰 일어날 필요가 없을 때면 나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의 전원을 끈다. 강제적이지 않은 기상(起牀), 여행 중 누리는 작지만 큰 행복이다.


전원을 끄시겠습니까? /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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