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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un 02. 2024

열차여행의 로망


‘낮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창문 밖 풍경을 감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백색소음이 주는 편안함에 어느새 눈꺼풀이 스르륵 감기고, 달콤한 낮잠 후엔 읽다 말다를 반복하던 책을 꺼내도 보고 푸드카트의 간식거리에 눈을 돌려도 본다. 밤에는 나만의 작은 공간에 누워 도시에서 도시, 나라에서 나라를 넘나 들다 아침이 밝으면 어제와는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뜬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이루지 못한 꿈이다. 나의 버킷리스트이자 여행에 대한 로망 중엔 ‘탈것’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그건 바로 크루즈 여행과 열차여행이다. 어린 시절 아가사 크리스티 Agatha Christie 의 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열심히 봤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러나 값비싼 특급열차로 떠나는 여행은 내겐 아직 사치이며, 여자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전제가 가진 불안함과 알고 보니 내가 편안함과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심야시간의 이동을 주저하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가 생겼을 땐, 유럽 야간열차의 운행 노선이 많이 축소된 상태였다.




꿩 대신 닭? 욕구불만의 표출인가?


더 편하고 빠르며 저렴하기까지 한 항공편 대신 기차 승차권을 발권했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출발해 세비야로 향하는 고속열차이다. 약 3시간이 걸리는 노선으로,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이었다. 열차는 생각보다 넓고 깨끗했으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명씩, 총 네 명이 마주 보는 구조이다. 미리 예약한 내 자리는 정방향 창가석이었고 옆자리와 맞은편 승객들도 맘에 들었다. 적어도 소매치기는 아닌 것 같으니깐.


빠르게 달리는 창밖으론 조금은 지루하게 끝없는 농지가 펼쳐지고 있었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믿음이 생겼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감이다. 물론 저들이 한 패거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처음 기차 티켓을 끊을 때만 해도 캐리어를 도난당하진 않을까 불안했지만 아주 잠시간의 걱정일 뿐이었다. 짐을 두고도 자리를 벗어날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일어나 열차를 둘러보다 보니 식당칸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의 문이 열린 순간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유럽에서 기차여행을 하고 있구나!’




로망 속 이야기 중 하나였던 간식거리를 사 들고 돌아오니, 제 자리에서 얌전히 나를 기다리는 짐이 보였다. 결과적으로 나의 판단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역시, 좋은 사람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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