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May 30. 2024

갈매기한테 뒤통수 맞은 사연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루프톱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아직 본격적인 식사시간 전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았고, 덕분에 바다와 하늘이 마주 보이는 명당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서 내려다본 지중해는 무척이나 푸르고 아름다웠으며, 니스의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맑고 청명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혼자 감격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차에 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앞에 놓인 두툼한 버거를 반으로 잘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입안에 퍼지는 질 좋은 고기의 육즙과 신선한 토마토, 양배추, 그리고 고소한 번이 만들어 내는 조화는 니스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손색이 없었다. 심지어 사이드로 나온 감자튀김마저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왜 여행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완벽할까’


여기서 나가면 바로 공항으로 향해야 하는 나의 처지를 잠시나마 뒤로 하고, 그 장소와 시간에 온전히 빠져 들었다. 이 완벽한 순간을 깨뜨릴 이름 모를 생명체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무슨 일이지? 누구야!‘, 사고가 정지했다 돌아온 그때,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나의 머리가 테이블에 코를 박다시피 숙여져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느다란 두 다리가 나의 소중한 버거 반쪽을 집어 들고 하늘로 튀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막 먹으려던 참인데...’



“괜찮아? 저렇게 큰 갈매기는 처음 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직원이 와서 괜찮냐며 내 상태를 물으니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엄청 큰 갈매기가 내 뒤통수를 치고 버거를 집어서 나른 것이다. 보통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손에 들린 먹이를 낚아 채 가기는 해도,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 갈매기는 달랐다. 우선 니스 하늘을 맴돌며 만만한 먹잇감, 즉 혼자 앉아있는 여자 사람인 ‘나’를 포착했고, 작은 발로 집기 편하게 버거가 반쪽만 남을 때까지 기다렸으며, 목표물을 집은 뒤 바로 날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부터 접근해 내 뒤통수를 가격했다. 한마디로 치밀한 데다 인내심까지 있는 녀석이다. 흔히 우둔한 사람을 ‘새대가리’라는 말로 비유하는데 이는 틀린 표현이 분명했다.




뒤통수에 닿던 크고 묵직하고 축축하던 그 감촉, 그때 느꼈던 감정과 사람들의 시선, 테이블 위 처참한 광경, 그리고 사냥에 성공한 뒤 멋지게 날아오르던 녀석의 뒷모습. 갈매기 친구가 만들어준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다만 트라우마를 동반한 탓에, 새가 많거나 하늘이 뻥 뚫린 곳에 가면 긴장하며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는 아주 조금은 슬픈 이야기다.



© 2024. by JIN. All rights reserved.



이전 08화 주인장과 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