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광풍 속에서 고집스러운 ‘작은 인수 전략’의 명암
실리콘밸리를 휩쓰는 인공지능 열풍 속에서 빅테크들은 거침없이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구글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스타트업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인재와 기술을 흡수하고, 메타는 AI 기업에 140억 달러가 넘는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인 애플(Apple) 은 다릅니다.
애플은 여전히 ‘소규모 인수’ 중심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으며, 대형 AI 스타트업과의 메가딜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이는 ‘신중한 선택’일까요, 아니면 ‘위험한 고집’일까요?
애플은 역사적으로 대규모 인수합병(M&A)보다는 핵심 기술을 가진 소규모 스타트업 인수 → 내부 통합 → 애플식 완성 이라는 전략을 고수해왔습니다.
2008년 반도체 스타트업 PA Semi 인수 → 오늘날 ‘애플 실리콘’의 기반
2010년 Siri 인수 → 음성비서 시장의 개척자
2014년 Beats 인수(예외적 대형 딜) → 하드웨어는 성공했지만, 소프트웨어 통합은 난항
즉, 애플은 외부 기술을 흡수하되, 이를 철저히 ‘애플 문화’ 속에 녹여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문화적 폐쇄성’ 입니다. 많은 창업자와 인재들이 인수 후 애플의 보수적 조직 문화에 실망하고 회사를 떠났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 흔한 사례입니다.
지금의 AI 경쟁은 과거 모바일 OS나 반도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속도: 대규모 모델을 훈련하고 상용화하는 데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 투입이 필요합니다.
네트워크 효과: 사용자 데이터와 피드백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인재 쏠림: 구글·메타는 스타트업을 사실상 ‘인재 확보 수단’으로 활용 중입니다.
애플이 이 경쟁에서 뒤처지면, iOS 생태계 전반—아이폰의 검색, Siri, App Store, 서비스—가 AI 네이티브 플랫폼에 밀릴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애플이 이제는 과감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애플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는 것입니다.
에디 큐(Eddy Cue): 오랫동안 넷플릭스, 테슬라 등 대담한 인수를 주장해왔던 실리콘밸리 네트워커. 최근에도 Mistral AI, Perplexity와 같은 스타트업 인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제안.
크레이그 페더리기(Craig Federighi):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전통적 입장. 과거 Turi 인수 때도 반대했던 대표적 보수파.
이 대립은 결국 애플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과도 연결됩니다. ‘혁신을 외부에서 사올 것인가, 내부에서 만들어낼 것인가?’
애플은 현재 현금 1,33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OpenAI, Anthropic 같은 초대형 AI 기업을 인수할 능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과 규제 리스크입니다.
OpenAI 기업가치: 5,000억 달러
Anthropic: 1,700억 달러
Mistral: 100억 달러 (상대적으로 ‘저렴’)
여기에 더해, 애플은 “비싸게 사지 않는다” 는 전통적인 원칙을 고수합니다. 2018년 Shazam을 4억 달러에 인수했을 때조차 광고 비용 절감을 근거로 철저히 계산했을 정도죠.
가장 가까운 촉매제는 구글 반독점 재판입니다.
만약 구글이 더 이상 애플에 연간 200억 달러를 지급하지 못하게 된다면, 애플은 검색 영역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 순간, Perplexity 같은 AI 검색 스타트업 인수는 단숨에 현실적인 옵션으로 부상할 수 있습니다.
애플의 강점은 완성도 높은 제품 경험과 폐쇄적이지만 견고한 생태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AI 경쟁은 속도전이자 개방전입니다.
지나친 보수주의는 혁신을 늦출 수 있습니다.
무리한 대형 인수는 조직 문화 충돌로 실패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애플의 최선은 ‘전략적 선택과 집중’입니다.
단순히 거액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애플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력과 맞아떨어지는 AI 자산을 선별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애플은 이번에도 고집스럽게 기다리며 자체 혁신으로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AI 시대만큼은 외부 자산을 과감히 끌어안을 것인가?”
그 선택이 애플의 향후 10년을 좌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