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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규제까지 자른다고?

SEC와 DOGE의 위험한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흥미로운—and 동시에 위험한—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AI를 활용해 규제를 ‘잘라내기’ 위한 시도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정부 규제 축소를 전면에 내세우며, ‘정부 효율성 부서(DOGE,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라는 이름의 조직이 AI 도구를 도입했습니다.


이 AI는 챗봇처럼 작동하면서 SEC의 수많은 규정들을 분석해 “삭제 대상 후보”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다양성(Diversity) 관련 규정이나 기업의 보고 의무처럼, 행정부가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는 항목들이 우선 타겟이 되고 있죠.


DOGE, AI로 규제에 칼을 대다

DOGE는 원래 일론 머스크가 주도했던 조직으로, 정부 경험이 없는 젊은 엔지니어 출신들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슬래시 앤 번(Slash & Burn, 싹 쓸어버리는)’식의 공격적인 태도로 유명하죠. 실제로 이들은 증권사 자율 규제기구인 FINRA를 아예 해체하려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물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지만, 규제 기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힘을 빼려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SEC 내부에서도 변화가 감지됩니다. ‘AI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첫 ‘AI 책임자’를 임명하며 본격적으로 AI 실험에 뛰어들었죠. 하지만 문제는 이 AI가 특정 정치적 의제—예컨대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철폐 기조—에 맞춰 학습됐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이 툴은 트럼프 행정명령, 보수 성향 정책 보고서, 심지어 최근 발의된 스테이블코인 법안까지 반영해 훈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의 우려

SEC의 전 고문이었던 코리 프레이어(Corey Frayer)는 이번 시도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이미 잘 이해하고 있는 규제들을 AI가 ‘후보 리스트’로 뽑아내고, 다시 사람이 검토해야 합니다. 이는 효율이 아니라 오히려 리소스를 낭비하는 방식이죠.”

즉, 규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AI가 단순 반복 작업을 양산하고, 결과적으로 SEC의 감시 역량만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무엇보다도 SEC는 이미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기관이기에, 이런 접근은 ‘효율화’가 아니라 ‘규제 파괴’에 가깝다는 것이죠.


정치, 기술, 규제가 얽힌 복잡한 그림

DOGE의 실험은 단순히 SEC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 2025—연방 정부 전반을 보수 성향으로 재편하겠다는 청사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규제 기관을 약화시키고, 기업 친화적 환경을 만들려는 전략 속에서 AI는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딜레마가 있습니다.

AI의 객관성: 정치적 자료를 학습한 AI가 공정하게 규제를 분석할 수 있을까?

전문성 문제: 수조 달러 규모의 자본시장을 관리하는 규제가 ‘챗봇 리스트’로 정리될 수 있을까?

제도적 안정성: 규제 기관의 권한을 흔드는 시도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지 않을까?


효율인가, 위험한 도박인가

AI를 활용한 규제 혁신은 매력적인 아이디어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지금 SEC에서 벌어지는 일은 혁신이라기보다 정치적 실험에 가깝습니다. AI는 단순히 ‘칼’이 아니라, 누구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도구일 뿐입니다.


만약 규제 완화를 위해 AI가 활용된다면,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이 숨통을 틔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SEC의 핵심 임무가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번 사례는 AI가 가져올 ‘규제의 미래’에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AI는 규제 혁신의 동반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 금융 시스템의 불확실성을 키울 것인가.

한국 독자들에게도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AI 규제 활용 논의가 본격화되기 전에, 기술과 정치, 그리고 시장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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