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지금 피클에 빠져있
혹시 요즘 미국에서 가장 핫한 스낵 트렌드가 뭔지 아시나요? 바로 피클(pickle) 입니다. 단순히 햄버거 사이에 들어가는 아삭한 오이 절임이 아니라, 이제는 음료, 아이스크림, 심지어 버거 빵 대신 통피클로 만든 샌드위치까지… 피클이 ‘주인공’이 된 시대가 열렸습니다.
피클의 인기에는 몇 가지 키워드가 숨어 있습니다.
향수(Nostalgia): 소금기 가득한 아삭한 피클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맛이죠. 어린 시절 햄버거 세트에서 빼먹던 그 조각이 이제는 메인으로 부상했습니다.
건강(Health): 발효 식품이라는 점이 Z세대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장 건강, 저칼로리, 저지방… 요즘 웰니스 키워드에 딱 맞습니다.
문화(Culture): 김치, 콤부차처럼 다른 발효 음식 트렌드와 맞물려 글로벌 식문화 교류의 상징처럼 소비됩니다.
자극(Intensity): 단순 짠맛을 넘어 매운맛, 새콤한 맛과 결합하며 ‘강렬한 풍미’를 원하는 세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데이터는 더 확실합니다. 2024년 한 해에만 피클 관련 제품이 2만 개 이상 출시됐고, 미국 스낵 소비자의 65%가 피클 맛 제품을 경험했거나 관심 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Z세대는 “좋아한다”는 걸 넘어 “집착한다(obsession)”고 표현할 정도죠.
이 열풍의 배경에는 SNS 밈(Meme)과 셀럽의 참여가 있습니다.
배우 파멜라 앤더슨은 직접 피클 브랜드를 론칭해 판매 수익을 야생동물 센터에 기부했습니다.
가수 두아 리파는 다이어트 콜라에 피클 주스를 넣어 마셔 화제가 됐습니다.
틱톡에서는 ‘차모이 피클(Chamoy Pickle)’이라는 멕시코 스타일 피클이 대유행했습니다. 붉은 양념 피클을 파내고, 안에 사탕과 핫치토스, 타키스를 채운 뒤 롤업 캔디로 감싸는 영상은 수백만 뷰를 기록했습니다.
이쯤 되면 피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콘텐츠 소재가 된 셈이죠.
패스트푸드부터 스낵 브랜드까지 앞다퉈 피클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파파이스(Popeyes): 피클 글레이즈 치킨샌드위치, 피클 레모네이드 출시.
소닉(Sonic): 피클칩, 피클 슬러시, 피클 향 차량용 방향제까지 들어 있는 ‘Big Dill Meal’ 패키지.
지미존스(Jimmy John’s): 아예 빵 대신 통피클을 사용한 ‘Picklewich’.
캘리포니아 피자 키친(CPK): 냉동 딜 피클 피자.
스위트그린(Sweetgreen): 피클 케첩과 감자튀김 세트.
샤케쉑(Shake Shack): 한정판 프라이드 피클 사이드.
뿐만 아니라 프링글스, 골드피쉬, 피스타치오 등 스낵 브랜드들도 피클맛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Z세대를 겨냥한 ‘Hot Girl Pickles’처럼 패키징부터 컬러풀하게 재해석된 스타트업 브랜드까지 등장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흐름이 한국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다는 겁니다.
이미 우리는 김치, 깍두기, 장아찌 등 발효 채소에 친숙합니다.
‘맥도날드 피클 빼달라’ 세대와 ‘김치 없으면 밥 못 먹는’ 세대가 공존하는 문화도 재미있죠.
해외에서는 피클이 “헬시하면서도 펑키한 발효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이건 한국 브랜드가 김치 마케팅을 글로벌하게 확장할 수 있는 좋은 힌트이기도 합니다.
피클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몇 가지 중요한 인사이트를 줍니다.
세대 맞춤 포지셔닝: Z세대가 집착하는 맛, 건강, 컬처 코드를 잡으면 브랜드는 새로운 기회를 만듭니다.
콘텐츠화 전략: 피클처럼 일상적이던 것도 밈과 크리에이티브로 재탄생하면 바이럴이 가능합니다.
협업의 힘: 패스트푸드와 스낵,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크로스오버하며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앞으로는 피클 다음으로 ‘지아르디네라(giardiniera)’ 같은 다른 발효 채소류가 뜰 거란 전망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소비자들이 “익숙하지만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겠죠.
피클 열풍은 단순히 "맛있다, 신기하다"로 끝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세 가지 마케팅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Z세대가 원하는 ‘감각적 경험’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을 먹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밈(Meme), 그리고 참여 경험을 함께 소비합니다. 피클은 발효식품이라는 기능적 가치를 넘어, 색깔·조합·유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를 제공합니다. 한국 브랜드도 이런 감각을 차용해 김치나 장아찌를 "쿨한 놀이문화"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건강과 향수의 이중 포지셔닝
피클은 저칼로리, 발효, 장 건강 등 웰빙 트렌드와 동시에 ‘햄버거 속 작은 조각’이라는 향수적 요소를 동시에 자극합니다. 이중적 포지셔닝이 세대를 넘어서는 확산력을 만든 것이죠. 한국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김치를 마케팅할 때도 ‘건강(프로바이오틱스)’과 ‘문화(코리안 컬처)’를 함께 전달해야 공감대를 넓힐 수 있습니다.
콜라보와 크로스오버의 힘
패스트푸드, 스낵, 음료, 심지어 아이스크림까지… 피클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협업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이는 "제품 카테고리를 뛰어넘는 협업"이 어떻게 브랜드를 신선하게 보이게 하는지 보여줍니다. 김치·고추장·된장 같은 한국 전통 발효식품도 글로벌 브랜드와의 이색 협업을 통해 더 넓은 팬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결국 피클은 단순한 사이드 메뉴가 아니라, 세대와 문화를 잇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한국 브랜드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익숙한 전통도 Z세대의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다면 글로벌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것.
다음 유행이 피클에서 지아르디네라로,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발효 채소로 바뀌더라도, 중요한 건 트렌드 그 자체가 아닙니다. 핵심은 어떻게 작은 변화를 포착해 큰 문화로 확장시키느냐에 있습니다. 피클이 보여준 짠맛의 마케팅은 바로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