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칩을 다시 빌려 쓰는 이유
엔비디아(Nvidia)가 다시 한 번 AI 산업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였습니다. 최근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소규모 클라우드 스타트업 램다(Lambda)와 약 15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계약이 엔비디아가 자신이 만든 칩을 램다로부터 다시 빌려 쓰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계약 규모: 10,000개의 GPU를 13억 달러에 4년간 임대, 별도로 200만 달러 규모의 칩 추가 임대 계약.
이중적 관계: 엔비디아는 램다의 칩 공급업체이자, 투자자이자, 최대 고객.
사용 목적: 엔비디아 자체 연구팀과 DGX Cloud(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에 활용.
즉, 엔비디아는 칩을 만들고 → 스타트업에 공급한 뒤 → 다시 임대해 사용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를 통해 램다는 IPO(기업공개)를 앞두고 안정적 매출 기반을 확보하고, 엔비디아는 더 많은 클라우드 고객에게 GPU 사용을 확산시키는 전략적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램다는 이른바 네오클라우드(Neocloud)라 불리는 신흥 GPU 전문 클라우드 기업 중 하나입니다.
성장 목표: 2026년 매출 10억 달러, 2030년 200억 달러.
고객사: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미드저니(Midjourney), 향후 OpenAI·Anthropic·xAI 등 대형 AI 개발사까지 확장 예정.
차별점: 전통적 클라우드(AWS·Azure·Google Cloud) 대비 훨씬 유연하게 엔비디아 최신 칩을 도입하고, AI 특화 고객사에 맞춤형 지원을 제공.
대표적인 경쟁사 코어위브(CoreWeave) 역시 엔비디아의 지원으로 급성장했고, 지난 3월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이번 램다 사례는 ‘제2의 코어위브’ 전략으로 읽힙니다.
엔비디아가 왜 이런 ‘자사 칩 재임대’라는 복잡한 구조를 택했을까요? 핵심은 장기적 시장 지배력 유지입니다.
빅테크(아마존, 구글, MS)는 이미 자체 AI 칩(TPU, Athena 등)을 개발하며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램다·코어위브 같은 신흥 클라우드는 전적으로 엔비디아 칩에 의존합니다.
엔비디아가 이들을 육성하면, GPU 생태계가 확장되고 빅테크와의 협상력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즉, 엔비디아는 경쟁자이자 고객인 빅테크와의 줄다리기를 대비해, 신흥 클라우드를 ‘우군’으로 키우는 셈입니다.
전력·데이터센터 확보: 램다는 현재 47MW에서 2030년 3GW까지 확장 목표를 세웠지만, 전력·부지 확보가 현실적 과제가 될 것.
칩 경쟁 구도: 구글 TPU 등 대체 칩의 확산 여부에 따라 램다·코어위브 같은 GPU 특화 클라우드의 성장 속도가 달라질 것.
IPO 효과: 상장을 통해 자본 조달에 성공한다면, 엔비디아와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지고 시장 점유율 확대가 가속될 전망.
엔비디아와 램다의 계약은 표면적으로는 다소 기묘한 ‘자사 칩을 빌려 쓰는 거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는 AI 칩 패권을 공고히 하려는 엔비디아의 다층적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생태계 확장입니다. 빅테크가 자체 칩 개발을 가속화하면서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는 상황에서, 네오클라우드와 같은 신흥 기업을 적극 육성함으로써 GPU 의존형 생태계를 확대합니다. 이는 향후 빅테크와의 협상력 유지에도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둘째, 시장 견제입니다. 아마존·구글·MS 같은 메이저 클라우드는 GPU 구매력이 막강하지만 동시에 가장 큰 잠재적 경쟁자입니다. 반면 램다·코어위브 같은 네오클라우드는 엔비디아 칩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어, 엔비디아에 훨씬 더 ‘우호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 기업이 성장할수록 엔비디아는 ‘대체 칩’보다 자사 GPU의 시장 표준화를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셋째, 미래 투자 포지셔닝입니다. 이번 계약은 단기적으로는 램다 IPO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가 새로운 수익 모델(DGX Cloud)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자사의 연구팀부터 미드저니·Anthropic 같은 대형 AI 스타트업까지 GPU 사용을 촉진하면서, 자연스럽게 엔비디아 중심의 AI 인프라 질서를 고착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결국 엔비디아의 이번 선택은 칩 제조사에 머무르지 않고, AI 인프라 전반을 통제하는 제국적 플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기적 손익보다 전략적 거버넌스를 우선시하는 이 방식은, 앞으로 AI 산업에서 칩-클라우드-생태계가 어떻게 얽혀 움직일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탄입니다.
앞으로 관전 포인트는 램다가 IPO 이후 얼마나 안정적으로 전력·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확보하느냐, 그리고 구글 TPU나 자체 칩을 강화하는 빅테크와의 경쟁 구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일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엔비디아가 이미 “AI 칩 제국의 중심” 자리를 굳건히 다져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