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일럿은 진짜 동료가 될 수 있을까?”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오피스(Office)’는 지난 30년간 회사의 절대적인 캐시카우이자 글로벌 비즈니스의 표준 툴이었습니다.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로 대표되는 오피스는 단순한 소프트웨어를 넘어, 글로벌 직장인의 일상 그 자체였죠. 그런데 AI 시대가 열리면서 이 전통 강자에게도 위기감이 찾아왔습니다.
사티아 나델라 CEO는 최근 “오피스의 성장은 AI와 함께 가지 않으면 둔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AI 기반 ‘마이크로소프트 365 코파일럿(Copilot)’의 품질 개선과 확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클라우드 기업 인포매티카(Informatica)입니다. 이 회사는 5,000여 명의 임직원을 둔 전형적인 오피스 타깃 기업. 지난해 일부 직원에게 코파일럿을 테스트했지만, 결국 도입을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코파일럿은 좌석당 월 30달러, 기존 오피스 요금의 약 두 배.
하지만 실제 업무 효율이 가격만큼 개선된다는 확신은 부족.
차라리 자체적으로 만든 챗봇이 더 경제적이고 실용적.
즉, ‘좋아 보이지만 돈 낼 만큼은 아니다’라는 냉정한 평가가 내려진 셈이죠.
코파일럿은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여전히 기본 기능에서도 불안정합니다. 예를 들어, 엑셀 데이터 예측이나 파워포인트 자동 생성 같은 기능은 잦은 오류로 출시가 계속 지연되고 있습니다.
올여름 예정됐던 엑셀 기반 PPT 자동 생성 기능 → 연말로 연기
팀즈(Teams) 회의 요약 기능 → 무기한 보류
고객이 기대한 “AI 동료”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위기감을 느낀 나델라는 직접 매주 코파일럿 점검 회의를 주재하며, 오피스 조직 리더십을 전면 교체했습니다.
LinkedIn CEO 라이언 로슬란스키를 오피스 AI 총괄로 겸임 발탁
비즈니스 앱 총괄 찰스 라만나를 승격
흥미로운 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OpenAI) 대신 앤트로픽(Anthropic)의 모델을 일부 기능에 도입하기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오픈AI에 막대한 투자를 한 상황에서도, 안정성과 정확성을 위해 경쟁사 AWS 기반의 모델을 채택한 것이죠. 이는 그만큼 “지금은 모델 충성도보다 품질이 중요하다”는 나델라의 절박함을 보여줍니다.
부정적인 신호만 있는 건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토요타, 바클레이즈, PwC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수만 석 규모의 코파일럿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단일 고객 규모만 놓고 보면 분명 성과입니다. 하지만, 시장 전반의 반응은 아직 조심스럽습니다. 실제 중견·중소기업 CIO들은 “도입 비용 대비 생산성 향상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구매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을 단순한 툴이 아니라 “새로운 동료”로 포지셔닝하려 합니다. 나델라는 코파일럿이 인사 담당자, 영업 사원처럼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길 바라고 있죠.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비싼 보조 기능”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기능 안정화 지연
가격 대비 불확실한 ROI
대체재(자체 챗봇·경쟁 AI 툴)의 성장
향후 몇 달간 예정된 업데이트—특히 올해 11월 ‘Ignite’ 컨퍼런스 발표—가 진정한 변곡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번 사례는 AI 시대에 “혁신 그 자체보다, 혁신을 설득하는 힘”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B2B 고객은 기능보다 ROI와 확실한 사례를 요구한다.
초기 화려한 런칭보다 지속적 신뢰 확보가 핵심이다.
가격 정책은 단순 할인보다 효용성에 대한 납득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의 과제는 “AI가 진짜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보여주는 것. 그렇지 않다면, 고객들은 언제든 더 값싼 대안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