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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머니볼’ 시대

유소년 스포츠 앱이 만든 새로운 경쟁의 생태계

by 마케터의 비밀노트

스포츠는 원래 즐거움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 미국의 부모들에게 유소년 스포츠는 더 이상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앱으로 경기 영상을 스트리밍하고, 실시간으로 기록을 입력하며, 대학 스카우터에게 보내기 위한 하이라이트 영상을 편집한다. 이제 10살짜리 아이의 경기조차 데이터 분석과 투자금이 얽힌 ‘머니볼(Moneyball)’의 세계로 변했다.


1. 유소년 스포츠의 디지털화—앱이 바꾼 부모의 하루

휴스턴의 직장인 로렌 드랩(Lauren Drapp)은 천연가스 일정을 조율하는 본업보다 바쁜 또 하나의 ‘직업’이 있다. 바로 두 딸의 스포츠 매니저다.
그녀의 스마트폰에는 일곱 개의 스포츠 앱이 폴더로 묶여 있다.
GameChanger로 둘째의 소프트볼 경기를 시청하고, Hudl로 첫째의 배구 영상을 확인하며, 팀 스케줄은 또 다른 앱에서 관리한다.

“가장 큰 불만은 앱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경기 보는 곳, 팀 메시지 받는 곳, 전부 다 다르죠.”
이제 미국의 부모라면 누구나 ‘the app stuff’—유소년 스포츠 앱의 혼잡한 세계—에 대해 한두 번쯤 불평을 한다.

하지만 이 불평 뒤에는 연간 4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이 있다.
The Aspen Institute에 따르면, 미국 부모들이 자녀의 스포츠 활동에 쓰는 돈은 매년 400억 달러를 넘는다.
그중 약 120억 달러가 각종 유소년 스포츠 기술과 앱 산업으로 흘러간다(Boston Consulting Group).


2. 투자자들이 몰리는 새로운 ‘골드러시’

GameChanger, Hudl, LeagueApps, GoRout 등은 이제 ‘리틀리그용 스포츠테크’의 대표주자다.
데이터 수집, 경기 스트리밍, 팀 관리 등 모든 기능을 앱 하나로 연결하는 이들 플랫폼은 빠르게 성장 중이다.

투자자들의 시선도 뜨겁다.
Bain, Accel-KKR 같은 대형 사모펀드가 이미 주요 플랫폼에 투자했고, LionTree는 매주 한 번꼴로 “유소년 스포츠 테크에 투자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 배경엔 ‘조기 스카우팅’이라는 신시장이 있다.
NCAA가 2021년 대학 선수들의 브랜드 협찬 수익을 허용하면서, 대학팀들은 더 어린 연령대의 데이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제 돈이 더 아래로, 더 어린 세대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LionTree의 매니징 디렉터 알렉스 마이클은 말했다.
“과거엔 프로 선수만 썼던 서비스를 이제 초등학생이 쓰고 있죠.”


3. 팬심에서 ‘빅데이터’로—스트리밍의 부상

스마트폰 하나로 어디서든 경기 중계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부모와 조부모들은 실시간으로 아이의 경기를 본다.
이 장면은 동시에 모든 게 기록되는 ‘디지털 필드’가 된다.
경기 장면은 스카우터가 검토하고, 일부 영상은 TikTok과 Instagram을 타고 퍼진다.

그런데 이 편리함은 때로는 코믹한 부작용을 낳는다.
캘리포니아의 한 엄마는 “시어머니가 경기 중 욕설을 한 게 고스란히 라이브 피드에 녹화됐다”며 웃었다.
“‘그 애는 팀에 끼면 안 돼’라고 말한 게 전부 방송에 나간 거죠.”

이처럼 ‘GameChanger 부모’는 이제 하나의 밈(meme) 문화가 되었다.
TikTok에는 통계를 조작해 자녀의 스카우팅 기회를 높이려는 부모를 풍자한 영상이 넘쳐난다.
“그 애의 실책을 안타로 바꾸면 평균 방어율이 떨어지잖아요!”라며 싸우는 패러디 영상이 10만 회 이상 조회되기도 했다.


4. 경기보다 데이터에 더 열광하는 시대의 그림자

유소년 스포츠 앱의 등장은 분명 편리함과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만큼 ‘숫자 경쟁’이 아이들의 즐거움을 잠식하고 있다.

Hudl의 COO 맷 뮐러는 이렇게 경고한다.
“8살짜리 아이가 자기 평균자책점을 걱정해야 하나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즐겁게 뛰는 거예요. 하지만 부모와 코치가 그 균형을 자주 잃습니다.”

아이들이 땀 흘리며 뛰던 주말 아침은 이제 ‘데이터 관리의 시간’으로 변했다.
한 GameChanger 부모는 “기록 버튼을 누르다 보면 경기를 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숫자에 몰입한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의 운동장에서 다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5. 스포츠 앱, 새로운 ‘커뮤니티의 종교’가 되다

LionTree의 마이클은 이렇게 분석했다.
“가격이 올라도 부모들은 자녀 관련 지출을 멈추지 않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비탄력적 수요’죠.
어찌 보면 유소년 스포츠는 이제 종교를 대체한 새로운 커뮤니티의 형태가 되고 있습니다.”

팬층은 커지고, 자본은 몰리고, 앱은 진화한다.
Dick’s Sporting Goods가 2016년 6,400만 달러에 인수한 GameChanger는 2024년 매출 1억 달러를 기록하며, 올해 1억 5천만 달러를 전망한다.
Hudl은 32만 개 팀을 고객으로 두고 상장을 검토 중이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아이들의 스포츠를 더 나은 경험으로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경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가?”


6. 데이터보다 중요한 건 ‘즐거움’이다

아이들이 뛰는 이유는 ‘스카우팅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공을 차고, 점수를 얻고, 패배를 배우는 과정 그 자체가 가치다.

Hudl의 뮐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누가 뭐래도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행복한 경기 경험이에요. 우리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소년 스포츠 앱은 ‘미니 머니볼’의 시대를 열었다.
데이터와 자본은 분명 이 시장을 더 크고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스포츠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놀 수 있는 경기장이야말로, 진짜 승리의 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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