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레더(Ginger-Leather)’ 향수 캠페인이 남긴 기묘함
공항을 지나며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광고가 있다. 거대한 글로벌 미디어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광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색했고, 어딘가 이상하게 조악했다.
그리고 나는 자꾸만 그 광고 앞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대체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이게 정말 큰 브랜드의 캠페인이 맞는가?
이번 글은 “올해 최악의 광고”라고 불리는 그 문제의 Hugo Boss 향수 캠페인 얘기다.
그리고 이 광고가 남긴 데자뷰 같은 불편함은 단순히 ‘못 만든 크리에이티브’의 문제가 아니다.
브랜드 라이선스 구조, 글로벌 마케팅의 현실, 그리고 브랜드 전략 부재가 모두 한 장면에 응축된 사건이다.
광고의 기획 자체가 애초에 흔들린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들리 쿠퍼, 라틴 뮤지션 말루마, 브라질 축구 스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이 세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 이미지도, 문화적 연결성도, 향수와의 연관성도 없다.
그러나 캠페인은 이들을 작은 무대 안에 억지로 밀어 넣는다.
마치 “모든 타깃을 한 번에 잡아보자”는 욕심으로 만든 체크리스트 같았다.
전략가 마이클 포터는 말했다. “전략이란 선택이다.”
그러나 이 캠페인은 선택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그 결과 ‘전략 부재’만이 강렬하게 남았다.
이 광고에서 반복되는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Boss recognize Boss.”
문법적으로도 틀리고, 의미적으로도 연결되지 않고, 브랜드 톤에도 맞지 않는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AI가 만든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지만, 오히려 AI조차 이렇게는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건 그냥 ‘기획 단계에서 누구도 말리지 않은 슬로건’의 부작용이다.
가장 충격적인 건 광고의 퀄리티다.
브래들리 쿠퍼의 머리 뒤로 대충 끼워 넣은 Boss 로고
없는 그림자
어색하게 합성된 팔
티셔츠 위에 억지로 그려 넣은 페이크 식스팩
이 모든 요소가 “대형 글로벌 브랜드의 캠페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배우들의 표정도 문제다.
말루마는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애썼다.
비니시우스 Jr.는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하지만 핵심은 브래들리 쿠퍼다.
그는 화면 속에서 마치 도움이 필요하다는 듯한 ‘절망적 응시’를 남긴다.
광고는 향수를 팔아야 하는데, 그의 표정은 오히려 “우리는 지금 광고라는 환상을 믿어도 되는 걸까?”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쿠퍼의 샷을 보고 있으면 생각하게 된다.
혹시 딱 한 컷만 찍었나?
일부러 망치려던 걸까?
감독이 실험적 아트 필름이라고 착각한 걸까?
광고의 마지막은 더욱 황당하다.
The New Ginger-Leather Fragrance
생강과 가죽. 이 두 단어는 체인소와 유치원처럼 결코 함께 있어서는 안 되는 조합이다.
프랑스어로 “Cuir Gingembre”라고 했다면 조금 더 감성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로 읽는 순간 향의 이미지는 완전히 붕괴된다.
30초 TVC는 더 기묘하다.
말루마는 브래들리 쿠퍼 영화에 감동해 극장에서 눈물을 흘린다.
비니시우스 Jr.는 말루마 콘서트에서 감정이 사라진 표정으로 쳐다본다.
축구 경기에서는 득점한 뒤 관중석의 브래들리 쿠퍼에게만 시선을 준다.
결론적으로, 이건 향수 광고가 아니라 브래들리 쿠퍼를 중심으로 한 정서적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다.
https://www.youtube.com/watch?v=ufevyzlJb54
놀랍게도 이 캠페인의 제작자는 Hugo Boss 본사 팀이 아니다.
향수 라이선스를 보유한 프랑스 기업 Coty가 만들었다.
럭셔리 브랜드가 향수·아이웨어 등을 장기 라이선스로 외부에 맡기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라이선스 보유자의 브랜드 해석이 다르고,
타임라인은 짧고,
무엇보다 미디어 예산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본사의 브랜딩 캠페인보다 라이선스 기업이 만든 캠페인이 더 많이 노출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Boss 본사는 최근 마케팅 책임자인 제임스 포스터 아래에서 새로운 감각의 캠페인들을 잘 만들어왔다.
그런데 이번 향수 캠페인은 그 성과를 한순간에 가려버렸다.
아마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Boss recognize Boss? 아니… 지금은 제발 나를 Boss로 보지 말아줘…”
이 캠페인은 단순한 ‘웃긴 크리에이티브 실패’가 아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브랜드는 누가 통제해야 하는가?
라이선스 모델이 브랜드의 일관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
전략·표현·언어·비주얼이 불일치할 때 브랜드는 얼마나 허약해지는가?
그리고 현대 마케팅은 어디까지 괜찮은가?
광고 하나가 이렇게 많은 질문을 남기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진저-레더 향수처럼 기묘하지만, 우리가 배우는 점은 분명하다.
브랜드는 ‘모든 걸 다 하려는 순간’ 가장 빠르게 무너진다.
전략은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바로 이런 캠페인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