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프라이데이는 글로벌 ‘가격 함정’이다

왜 매년 브랜드들은 이 불리한 게임에 스스로 뛰어드는가

11월이 되면 전 세계가 일제히 빨려 들어가는 거대한 블랙홀 같은 이벤트가 있다. 바로 블랙프라이데이다.
한때는 미국 쇼핑 문화의 산물에 불과했던 이 날이, 이제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마진을 삼키는 ‘가격 전쟁의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매년 브랜드들은 어김없이 이 게임에 말려든다.

흥미롭게도, 이 날의 기원은 화려한 쇼핑 이벤트와는 거리가 멀다.
1950년대 필라델피아 경찰들의 불평에서 시작됐다.
긴 연휴를 마친 인파, 빅매치(Army-Navy 게임)를 보러 몰려든 팬들, 악천후까지 더해져 도시는 마비되고 범죄가 폭증했다.
경찰들은 이 끔찍한 금요일을 “블랙프라이데이”라 불렀다.

상인들은 ‘Big Friday’라는 이름으로 바꿔보려 했지만 실패했고, 오히려 1980년대 들어 “적자(red)에서 흑자(black)로 전환되는 날”이라는 마케팅적 서사가 덧씌워지며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이 서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날의 ‘검은색’은 회계장부가 아니라 혼란에 가까웠다.


아마존이 이 게임의 룰을 다시 썼다

블랙프라이데이가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해프닝이던 시절, 유럽은 그저 “우리는 추수감사절도 없는데 무슨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상황을 뒤흔든 건 2010년 아마존이었다.

아마존은 블랙프라이데이를 영국으로 가져왔고, 그 첫 해 사이트는 트래픽 폭주로 다운됐다. 오프라인 유통사들이 따라붙었고, 그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블랙프라이데이는 하루가 아니라 한 달 내내 이어지는 ‘블랙 노벰버(Black November)’로 변모했다.

이는 문화 확산이 아니라 전략적 의도였다.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은 명확하다.

고(高)거래량, 저(低)마진

데이터 확보 최우선

고객 락인

그러니 가격 할인은 아마존에게 최적의 무기다. 문제는 전통 유통사와 브랜드들이 이 흐름에 끌려 들어가며 고유의 브랜드 가치와 마진 구조를 잃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할인은 브랜드에게 무엇을 파괴하는가

1) 브랜드 가치가 무너진다

브랜드는 ‘감정, 의미, 차별성’으로 구축된다.
하지만 할인은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가격 경쟁”이라는 동일한 링 위로 브랜드를 끌어내린다.

세련된 감성을 팔던 이탈리아 소형차가 하루아침에 ‘지난주보다 50만 원 저렴한 자동차’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2) 마진이 붕괴된다

많은 기업들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매출 증가에만 집중하지만, 핵심은 매출이 아니라 이익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브랜드는 30% 이상의 마진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깊은 할인은 단기간 매출은 올릴 수 있어도,
이익을 거의 지워버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3) 매출의 ‘앞당기기 효과’

블랙프라이데이 매출의 상당수는
어차피 며칠 혹은 몇 주 뒤에 발생할 구매였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익은 낮아지고

12월 매출은 텅 비고

프로모션 의존도가 높아진다


4) 프로모션 중독

한 번 깊은 할인을 맛본 고객은 정가 구매를 기피한다.
브랜드는 다시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더 큰 할인에 손을 대고,
이는 더 큰 마진 하락과 브랜드 약화를 부른다.

“할인은 마약과 같아서, 한 번 시작하면 더 강한 용량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5) 소비자 습관의 파괴

계속된 블랙프라이데이는 소비자에게 “정가는 가짜 가격이다”라는 잘못된 학습 효과를 심어준다.

결과적으로:

브랜드는 할인 없이는 판매가 어렵고

카테고리는 가격 경쟁에 갇히고

장기적으로 시장 전체가 붕괴된다


그러나 참여하지 않으면 더 위험하다

기업 입장에서 블랙프라이데이는 역설적이다.

할인을 하면 손해

할인을 안 해도 손해

경쟁자가 할인하면 고객의 눈은 그쪽으로 쏠린다.
플레이어가 많아질수록 할인은 더 깊어지고,
브랜드의 선택지는 더 줄어든다.

결국 블랙프라이데이는 ‘가격 전쟁의 죄수의 딜레마’다.


그럼 브랜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정답은 ‘할인 안 하기’가 아니라 ‘할인을 재정의하기’다

블랙프라이데이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브랜드가 제공하는 가치 자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프로모션을 재설계해야 한다.

가격이 아닌 ‘경험’을 할인하라

한정판 세트

VIP 선구매

멤버 전용 혜택

패키지 증정

고객 입장에서 ‘혜택’은 유지하되, 브랜드의 정가 가치를 보호하는 방식이다.

카테고리와 브랜드의 프리미엄 포지션을 유지하라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에도 절대 할인하지 않는 브랜드가 있다.
애플, Aēsop, Patagonia 같은 브랜드는 할인하지 않음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더욱 강화한다.

가격이 아닌 ‘희소성’으로 경쟁하라

한정 재고

시간 제한

지역 제한

가격이 아니라 손에 넣기 어려움이 매력 포인트가 된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브랜드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블랙프라이데이는 유통사와 고객이 만든 문화가 아니다.
브랜드가 스스로 가격 경쟁의 늪으로 걸어 들어가며 완성된 시스템이다.

매년 반복되는 혼란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할인은 매출을 만든다. 하지만 브랜드는 이익으로 살아남는다.

블랙프라이데이는 그 간극을 가장 잔인하게 드러내는 날이다.

그리고 올해도, 수많은 브랜드들이 이 함정에 다시 스스로 발을 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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