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자동화”가 아니라 “감정 판매의 스케일링”이다

판도라가 AI 에이전트에 올인한 이유

by 마케터의 비밀노트

연말 성수기는 브랜드의 ‘체력’이 드러나는 시즌이다. 문의는 폭증하고, 배송·교환·환불 이슈가 겹치며, 매장과 온라인 모두에서 고객 경험이 흔들리기 쉽다. 문제는 이때의 경험이 곧 “다음 해의 브랜드 충성도”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주얼리 브랜드 Pandora(판도라)가 올해 초 AI 서비스 에이전트를 도입한 이유도 화려한 기술 시연이 아니었다. 연말 피크를 ‘추가 인력 600명 채용’ 없이 버티되, 고객 경험과 마진을 동시에 지키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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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에이전트, Clara: 성수기 생존을 만든 ‘운영형 AI’

판도라의 AI 서비스 에이전트 Clara는 2월 중순 웹사이트 챗봇으로 론칭했다. 결과는 꽤 명확하다.

고객 문의의 약 60%를 사람 상담원으로 넘기지 않고 해결(기존 챗봇은 40% 수준)

NPS(순추천지수) 10% 상승 기여

블랙프라이데이 포함 성수기 기간에 효율성이 “실제 배당(dividends)”으로 돌아옴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자동화율”이 아니다. 성수기 대응의 논리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는 피크를 대비해 콜센터를 늘리고, 교육하고, 야근을 투입한다. 판도라는 이 구조를 ‘AI를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사람을 600명 늘리는 것보다, 에이전트를 훈련시키는 편이 빠르고 확장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또 하나의 숨은 핵심은 데이터 가시성이다. 콜센터는 대개 “마감된 결과(처리 건수)” 중심으로 관리된다. 반면 Clara는 모든 대화를 분석해 해결 품질, 감정(센티먼트), 반복되는 불만 지점을 구조적으로 쌓을 수 있다. 고객경험(CX)을 ‘사후 대응’이 아니라 예측·개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셈이다.


2) 두 번째 에이전트, Gemma: 온라인에서 ‘감정 판매’를 복제하려는 도전

Clara가 운영 효율을 책임진다면, 두 번째 에이전트 Gemma는 판도라가 말하는 “다음 프런티어”다. Gemma는 6월 호주에서 조용히 테스트를 시작했고, 현재는 일부 트래픽(약 20%)에만 노출된다.

Gemma의 목표는 단순 추천이 아니다. 오프라인 매장의 판매 경험을 온라인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주얼리는 ‘탐색→필터→구매’로 끝나는 상품이 아니다. 매장에서는 직원이 이렇게 묻는다.

누구에게 주는 선물인가요?

어떤 관계인가요?

기념하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 풍부한 대화가 드롭다운과 검색 필터로 “납작해진다”. Gemma는 이 간극을 대화형 AI로 메우려는 시도다. 고객이 “윈드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이라고 말했을 때, 실제로 ‘윈드서핑 참’이 없더라도 질문을 이어가며 의미 연결고리(허니문 여행, 함께 간 장소, 기억의 상징)를 찾아내고, 그 스토리와 연결되는 제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판도라 내부에서 Gemma를 “문샷(moonshot)”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정·관계·기억을 기반으로 한 판매를 ‘스케일링’하는 건, FAQ 자동응답과 차원이 다른 난이도다.


3) 판도라가 노리는 진짜 자산: ‘기억(Memory) 데이터’의 축적

판도라는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는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기억을 판다.”

이 문장 하나가 전략을 설명한다. AI 에이전트의 진짜 가치는 단순히 문의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남기는 맥락(Context)을 모으는 데 있다.

클릭스트림 데이터는 “무엇을 눌렀는지”는 알려주지만, “왜 그랬는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반면 대화형 AI는 고객의 언어로 의도와 감정을 기록한다.

어떤 관계를 위한 선물인지

어떤 기념일/상황인지

무엇이 중요하게 느껴지는지(의미/가격/상징/디자인)

이게 쌓이면, 판도라가 말하는 디지털 채널 전반의 ‘지속 가능한 고객 기억’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기억’은 다음 구매, 다음 선물 시즌, 다음 관계 이벤트에서 다시 작동한다.


4) 숫자로 보는 맥락: “AI가 마진을 지키는 도구”가 된 순간

판도라는 연매출의 약 40%가 연말 마지막 3개월에 발생한다. 그리고 3분기 실적에서도 총마진 약 80% 수준을 유지하고 연간 EBIT 가이던스 약 24%를 재확인했다. 경영진은 거시 환경 압박 속에서 AI 기반 효율성과 스케일링을 중요한 상쇄 요인으로 반복 언급했다.

즉, AI는 “있으면 좋은 실험”이 아니라
마진과 운영 탄력성을 지키는 경영 레버가 됐다.


5) 한국 브랜드에 주는 시사점: “AI 에이전트 = 비용 절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판도라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AI를 두 층위로 분리해 운영한다는 점이다.

운영형 에이전트(Clara): 피크 대응, 비용·품질 안정화, VOC 데이터화

매출형 에이전트(Gemma): 온라인에서 상담/스토리/감정 판매를 확장


이 구조는 K-브랜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뷰티: “피부 고민→루틴→선물 상황”을 대화로 풀어내는 온라인 BA(Beauty Advisor)

푸드/스파이시: “매운맛 허용치→레시피 맥락→선물/파티 상황” 기반 추천(불닭 같은 브랜드에 특히 강력)

패션/라이프스타일: “용도/관계/취향/기념일” 중심의 스타일링 컨시어지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설계다. Gemma가 어려운 이유는 ‘추천 모델’이 아니라 질문을 잘하는 능력 때문이다. 즉, 에이전트의 경쟁력은 다음에서 갈린다.

브랜드가 정의한 좋은 질문의 스크립트

관계/상황/감정 맥락을 수집하는 대화 설계

“기억”을 다음 접점에서 재사용하는 CRM/채널 연동


AI 에이전트의 본질은 ‘효율’이 아니라 ‘경험의 확장’이다

판도라는 AI를 단순 자동화로 쓰지 않았다.
Clara로 성수기의 운영 체력을 확보하고, Gemma로 오프라인의 감정 판매를 온라인에서 확장하려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실험의 종착지는 하나다.
더 많은 주얼리를, 더 행복한 고객에게 파는 것.

AI 에이전트는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잘 설계하면 브랜드의 가장 인간적인 경쟁력(상담, 공감, 스토리)을 스케일링하는 도구가 된다. 판도라는 지금 그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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