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P가 유튜브 ‘비공개 크리에이터 데이터’에 베팅한 이유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감(感)으로 뽑는 협찬”에서 “데이터로 설계하는 미디어”로 이동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하나 나왔죠. WPP Media가 Google(YouTube)와의 파트너십을 확대해, 공개 지표로는 볼 수 없던(Non-public) 유튜브 크리에이터·영상 데이터를 자사 운영체계(WPP Open)와 인플루언서 조직(Goat Agency)에 직접 통합한다는 발표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지, 그리고 한국 브랜드(특히 글로벌 확장을 노리는 K-브랜드)가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한 번에 정리해볼게요.
크리에이터 캠페인은 늘 “좋은 크리에이터를 찾는 문제”에서 무너졌습니다. 팔로워 수·조회수 같은 공개 지표만으로는,
이 성과가 유료(ads)로 부스팅된 건지 / 진짜 자생(organic)인지
내 브랜드 타깃과 시청자 결이 실제로 맞는지
캠페인 종료 후 성과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는지
를 깔끔하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WPP는 이번 통합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크리에이터 투자(creator investment)를 ‘파편화된 집행’에서 ‘측정 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엔진’으로 바꾸겠다는 것. 그 전제 조건이 바로 “공개되지 않던 유튜브 인사이트”를 미디어 계획 단계부터 끌어오는 겁니다.
이번 발표에서 눈여겨볼 포인트는 “데이터를 본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구조가 2단입니다.
WPP가 2023년에 인수한 인플루언서 전문 조직 The Goat Agency가 유튜브의 “브랜드 딜(Brand deals) 지원용 신규 API”를 글로벌 초기 파트너 중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여기서 핵심 기능이 paid vs. organic 성과 분리 같은 더 깊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캠페인 매칭과 딜 생성·딜리버리를 정교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이 데이터는 WPP의 AI 운영체계인 WPP Open에도 흘러 들어갑니다. 즉, 인플루언서 팀만 보는 데이터가 아니라 미디어 플래너들이 전략/트렌드/크리에이터 발굴 단계에서 바로 쓰는 데이터가 되는 거죠.
결국 WPP가 만들려는 건, “발굴(Discovery) → 계약(Deal) → 집행(Delivery) → 측정(Measurement)”까지 이어지는 크리에이터 풀퍼널 운영 스택입니다.
이 투자가 ‘선제 베팅’이 아니라 ‘필수 방어’에 가까운 이유는 숫자가 말해줍니다. IAB는 미국 크리에이터 경제 광고비가 2025년 370억 달러, 전년 대비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장은 단순히 “인플루언서가 유행”이라서가 아니라,
브랜드가 소셜-퍼스트 전략을 진짜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소비자들은 유튜브를 거실 TV(CTV)로 더 많이 시청하면서, 유튜브가 전통 TV/스트리밍과 더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구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더 이상 “소셜 한 켠의 협업 자산”이 아니라 프라임 타임을 먹는 콘텐츠·매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WPP는 최근 몇 년간 WPP Open을 핵심 우선순위로 두고, AI-퍼스트 역량을 경쟁 우위로 만들겠다는 흐름을 강하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번 유튜브 데이터 통합도 그 연장선입니다. (크리에이터 마케팅을 “도구”가 아니라 “운영체계의 기능”으로 흡수)
게다가 WPP Media는 Pinterest 트렌드 데이터를 WPP Open에 통합하는 파트너십도 최근 진행했는데, WPP가 Pinterest Trends API를 커스텀 통합한 ‘첫 번째 에이전시’라고 밝힙니다.
트렌드(문화 신호) + 크리에이터(분배/콘텐츠) + AI(운영체계)를 한 줄로 연결하는 전략이 더 선명해진 셈이죠.
이 뉴스에서 한국 브랜드가 가져가야 할 교훈은 단순합니다.
크리에이터는 ‘재능 섭외’가 아니라 ‘미디어 설계’의 대상이 되었고,
승부는 “누구와 하느냐”만이 아니라 어떤 데이터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반복 최적화하느냐에서 납니다.
Paid vs. Organic 분리 관점으로 KPI를 재정의
조회수/도달만 보지 말고 “자연 확산”과 “미디어 증폭”을 분리해 해석하는 체계를 먼저 만들기.
크리에이터 ‘선정 기준’을 타깃-콘텐츠-상황(스크린) 3축으로 고정
팔로워 수보다 시청자 관심사/시청 맥락(모바일 vs CTV)을 우선순위로.
‘크리에이터=퍼포먼스’가 되는 순간을 대비
유튜브는 구매 전환이 늦게 나타날 수 있어, 단기 ROAS만으로 자르기보다 증분(incrementality) / 리프트 / 검색·리테일 시그널을 같이 보도록 설계.
트렌드 레이더를 ‘월 1회 보고서’에서 ‘상시 신호’로
WPP가 Pinterest 트렌드 API까지 붙인 이유는 “늦게 아는 트렌드는 이미 끝난 트렌드”이기 때문.
계약/권리/2차 활용(whitelisting) 표준화
크리에이터 운영이 커질수록 가장 많이 터지는 건 ‘계약’입니다. 포맷, 활용 기간, 편집 권리, 광고 집행 권한을 표준 템플릿으로.
에이전시/플랫폼 선택 기준을 “크리에이티브” + “데이터 접근성”으로
앞으로는 “콘텐츠 잘 만드는 곳”만으로는 부족하고, 어떤 데이터로 설계·측정 가능한가가 파트너 선정의 핵심이 됩니다.
WPP의 유튜브 비공개 데이터 통합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커졌다는 뉴스가 아니라 인플루언서가 ‘미디어 산업의 표준 운영 방식’으로 편입되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K-브랜드가 글로벌에서 더 크게 성장하려면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이번에는 누가 바이럴을 만들어줄까?”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는 크리에이터를 ‘측정 가능하게’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가?”
브랜드가 ‘크리에이터를 잘 쓰는 법’을 넘어, 크리에이터를 ‘미디어처럼 굴리는 법’을 학습하기 시작하는 순간, 경쟁자는 더 이상 같은 카테고리의 브랜드만이 아닙니다. “운영체계를 가진 플레이어” 전체가 경쟁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