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AI 노트 앱이 만든 새로운 ‘회의 문화’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중독적인 존재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그라놀라’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그라놀라는 아침에 먹는 시리얼이 아니다. AI 기반 노트테이킹 앱 ‘Granola’ 이야기다.
이 2년 된 스타트업이 만든 앱은 현재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창업자와 VC 사이에서 ‘올여름의 It 앱’으로 통하고 있다. 지난 5월 기업 가치는 약 5억 달러(한화 약 6,800억 원)로 평가받았고,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스, 메타 AI 책임자 나트 프리드먼 등 거물 투자자들로부터 7천만 달러 이상을 유치했다.
Granola가 얼마나 실생활에 침투했는지는 사용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Footwork 벤처의 공동 창업자인 니킬 바수 트리베디는 Granola를 단지 회의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변호사와의 미팅, 비영리단체 이사회 회의, 심지어 3살 반 된 딸아이의 유치원 선생님과의 상담 자리에서도 이 앱을 켰다고 말한다. “사실 뻔한 대화였지만요. 딸아이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착한 아이예요.”
Montreal의 소프트웨어 기업 Stark의 CEO, 캣 누운은 심리상담 세션에서 Granola를 쓴다. 대화 중에는 보다 집중할 수 있고, 상담 후엔 요약된 내용을 다시 읽으며 더 깊은 성찰이 가능하다고 한다. “작은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Granola가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잘 정리된 요약 기능 때문이 아니다. 회의 중 몰래 작동하며, 아무도 모르게 회의를 기록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오디오를 저장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텍스트화하며, 앱이 회의에 참여 중임을 상대에게 따로 알리지 않는다.
이 기능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업계에선 이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AI 스타트업 Micro의 CEO 브렛 골드스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 이젠 누가 회의 메모 앱을 쓰고 있다고 미리 알려주기를 기대하지 않아요.”
그라놀라를 켜기 전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유니언 스퀘어 벤처스의 매니징 파트너 레베카 카든 같은 이는 오히려 ‘희귀한 존재’다. 그녀는 “항상 물어보지만, 거절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Granola는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의 대화를 ‘자동 녹음’하고 있다는 상상은 프라이버시 위반으로 여겨졌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본값처럼 자리 잡은 셈이다.
완전한 은신 모드:
참여자에게 알리지 않고 회의 중 실시간으로 노트를 작성한다.
자연어 검색 기능:
“이번 주 내가 언급한 모든 파트너십 관련 내용 찾아줘” 같은 질의가 가능하다.
모바일 활용성:
저녁 미팅이나 병원 상담처럼 손으로 메모하기 애매한 자리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심플한 UX:
공동 창업자들은 “사용자의 1% 집중만으로도 활용 가능한 앱”을 목표로 설계했다.
Granola는 아직까지 누군가가 이 앱으로 인해 곤란해졌다는 악명 높은 사건이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안심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라놀라 공동 창업자 크리스 페드레갈은 이 앱이 법적 회색 지대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녹음 관련 법은 주마다 달라, 일부 지역에서는 양측 동의가 필수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처음 이 앱을 만들었을 땐 솔직히 걱정이 컸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게 ‘새로운 표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Granola는 2023년 페드레갈이 구글을 떠난 후, ‘생산성 도구 덕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디자이너 샘 스티븐슨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1년 반 동안 “정신의 1%만 써도 작동하는 앱”을 만들기 위해 몰두했고, 2024년 5월 앱을 정식 출시했다.
Micro의 창업자 브렛 골드스타인은 냉정하게 말한다. “Granola는 비즈니스라기보단 하나의 기능에 불과해요. 스냅챗 스토리처럼요.”
창업자 페드레갈 역시 위기를 알고 있다.
“지금의 그라놀라 기능만으로는 2년 뒤엔 버티기 어려울 거예요. 우리는 더 빨리, 더 똑똑하게 발전해야만 해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Granola는 단순히 '요즘 뜨는 앱'에서 그치지 않고, ‘회의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요약하고, 구조화하는 인공지능 비서’로 진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Granola는 단순한 노트 앱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방식을 바꿔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회의의 순간뿐 아니라, 상담, 식사, 심지어 자녀의 유치원 상담까지 자동으로 저장하고 분석하며, 그 내용을 다시 되짚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말합니다. "요즘은 다들 무언가로 회의를 기록하잖아요."
하지만 그 ‘당연함’ 속엔 프라이버시, 신뢰, 인간적인 대화의 여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내포돼 있습니다. 기술은 우리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기억을 보존해주지만, 그만큼 기억의 방식도 인간관계의 감도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Granola가 널리 쓰인다는 건 단지 하나의 툴이 유행하는 게 아니라, 이제 '기억 자체가 플랫폼화'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묻게 됩니다.
"지금 이 대화, 정말 기록될 만큼 중요한가?"
"아니면,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그냥 인간적인 순간인가?"
기억은 이제 사람의 뇌에만 저장되지 않습니다. 앱과 알고리즘, 서버와 요약 기능 안에 우리의 순간들이 남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묻고 선택해야 합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은 흘려보낼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