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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화려한 쇼 뒤에 숨은 인간의 손길

“완전 자율”이라는 환상과 현실 사이

by 마케터의 비밀노트

환호받은 무대 위 로봇, 그러나 뒤에서는

지난 3월, 엔비디아의 연례 컨퍼런스. 제센 황 CEO 옆에 서 있던 귀여운 스타워즈풍 로봇은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듯, 지시에 맞춰 정확히 움직였습니다. 관객들은 환호했고, 언론은 “AI 로봇의 미래”라며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습니다. 로봇이 걸음을 떼고 자리를 옮기는 순간순간은 사실 무대 뒤의 조종자가 지시한 결과였습니다. 디즈니 측은 “균형과 보행은 시뮬레이션 학습 덕분이지만, 무대 연출은 사람이 직접 조종했다”고 밝혔습니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역시 비슷한 경우입니다. 지난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옵티머스는 음료를 나르고 춤을 추며 관객과 교감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완전 자율인가?”라고 묻자, 로봇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저는 완전히 자율적이지 않습니다. 현재는 인간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로봇 산업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겉보기에는 자율적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노동’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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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인간의 개입이 필요한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공장 로봇은 수십 년 전부터 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완전 자율로 용접이나 도장 같은 반복 업무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목받는 AI 로봇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과제를 맡고 있습니다.

음식 배달 로봇: 보도 턱이나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면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하고 “도와주세요” 신호를 보냅니다.

자율주행 차량: 지도에 없는 공사 현장을 만나면 원격 조종자가 개입해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물류창고 로봇: 상자를 집고 봉투에 넣는 과정에서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할 때는 VR 헤드셋을 쓴 원격 조종자가 대신 움직임을 시연합니다.

즉, 로봇이 다루는 환경은 너무 불규칙적이고 복잡하기 때문에 아직은 완전 자율로는 버티기 힘든 단계입니다.


데이터 훈련 도우미로서의 인간

로봇 기업들이 굳이 사람을 개입시키는 이유는 단순히 ‘임시방편’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간이 조종하면서 만들어내는 방대한 행동 데이터는 곧 로봇의 학습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브루클린의 한 창고에서 Ultra Robotics가 도입한 두 팔 달린 로봇은 멕시코 원격 조종자가 VR 기기를 통해 상자를 집는 법을 알려줍니다. 이후 이 조작 데이터를 학습한 로봇은 점차 같은 동작을 스스로 해낼 수 있게 됩니다.

Coco Robotics의 음식 배달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개입해 로봇이 넘어지지 않도록 방향을 바꾸면, 그 데이터가 모델에 반영되어 다음에는 더 매끄럽게 움직이도록 학습됩니다.
즉, 인간은 단순한 ‘대타’가 아니라, 로봇이 자율성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교사(teacher)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새로운 일자리, 그러나 새로운 불균형

흥미로운 점은 로봇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게임에 익숙한 대학생들이 손재주를 살려 조종자가 되기도 하고,

원격 근무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기업들은 멕시코, 동유럽, 아시아 등 해외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기도 합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택시 기사나 창고 인력이 잃은 일자리를 보완하는 효과를 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자동화 덕분에 비용을 줄이면서도, 실제 로봇을 움직이는 손은 국경 밖의 저임금 노동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로봇은 “일자리 대체”만이 아니라, 일자리 재배치와 글로벌 노동 격차라는 문제를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로봇의 미래: 부분 자율과 인간 감독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전문가들은 로봇이 완전히 자율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봅니다.

“로봇이 80%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도, 나머지 20%의 실패가 있으면 산업 현장에서는 신뢰받기 어렵다.”

“결국 한 명의 조종자가 여러 대의 로봇을 동시에 감시하고, 위기 상황에서만 개입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히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며 역할을 분담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 질서를 예고합니다.


완전 자율’이라는 환상 뒤에서

우리가 유튜브 영상이나 무대에서 보는 로봇의 모습은 대개 ‘미래의 환상’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인간의 노동과 감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서사는 단순하지만, 실제 풍경은 훨씬 복잡합니다. 로봇은 점점 더 자율적이 되어가지만, 동시에 인간은 그 과정을 돕고, 감독하며, 때로는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로보틱스 산업의 진짜 과제는 기술의 완성도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 로봇 사이의 역할 재설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노동의 가치 재정의 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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