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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스타트업이 유럽 배터리 공룡이 된날

– 라이텐(Lyten)과 노스볼트(Northvolt)의 역전극

by 마케터의 비밀노트

2025년 여름, 글로벌 배터리 업계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때 유럽의 ‘테슬라 대항마’로 불리며 1,300억 달러(약 170조 원)의 주문을 확보했던 스웨덴 배터리 스타트업 노스볼트(Northvolt)가 파산했고, 그 거대한 유산을 단 250명의 직원을 둔 미국의 작은 스타트업 라이텐(Lyten)이 인수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업 인수합병이 아니라, ‘규모의 힘을 꿈꾸는 작은 기업의 기습적인 도약’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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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볼트, 유럽의 희망에서 몰락까지

노스볼트는 2017년 두 명의 전직 테슬라 임원, 피터 칼슨과 파올로 체루티가 창업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유럽의 자동차 산업은 “중국과 미국에 뒤처지지 않을 배터리 공급망”을 원했고, 노스볼트는 그 기대를 등에 업고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BMW, 폭스바겐, 볼보 등 굵직한 고객사

130억 달러 투자 유치

550억 달러 규모의 선주문 계약

하지만 화려한 숫자 뒤에는 운영 리스크와 품질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2024년 BMW가 “납기 지연과 품질 불량”을 이유로 2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파기하면서 균열은 본격화됐습니다. 이어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계약을 철회했고, 결국 노스볼트는 자금난에 빠져 2025년 3월, 파산을 선언합니다.

유럽이 기대했던 ‘배터리 자립의 상징’은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라이텐, 작은 스타트업의 과감한 베팅

노스볼트의 몰락은 대부분의 기업에게 ‘위험한 기회’로 보였지만, 라이텐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였습니다.

라이텐은 2015년 설립된 소규모 배터리 스타트업으로, 리튬-황(Lithium-Sulfur) 전지라는 차세대 기술에 집중해 왔습니다. 기존 배터리에서 흔히 쓰이는 니켈·코발트·철 대신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높은 황을 활용해, 드론·위성·군수용 배터리 시장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규모(scale)였습니다.
창업자 댄 쿡(Dan Cook)은 일찍이 “클린테크가 살아남으려면 글로벌 스케일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본사에서 주당 100개 수준의 배터리를 생산하던 라이텐은, 본격적인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기엔 한참 부족했습니다.

그때 노스볼트의 자산 매각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현금 비축, 채무 연기, 그리고 ‘승부수’

라이텐은 남들이 주저하는 사이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벤더 대금 지불을 미루고,

내부 프로젝트를 늦추고,

심지어 일부 인력을 감축하며

현금을 비축해 노스볼트의 공장 운영비를 직접 떠안았습니다.

파산 절차 속에서 폴란드 그단스크 공장과 스웨덴 셀레프테오 공장, 독일 R&D 시설까지 확보하며, 라이텐은 단숨에 ‘니치 플레이어’에서 ‘메이저 제조사’로 올라섰습니다.

산호세 본사: 주당 100개 배터리 생산

셀레프테오 공장: 주당 30,000개 생산 예정

숫자만 놓고 봐도 300배 도약입니다.


업계의 시선: 무모한 도전 vs 전략적 승부수

물론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합니다.

노스볼트조차 130억 달러 투자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는데,

라이텐이 단 6억 7천만 달러 모금 경험으로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의문.

더구나 기존 NMC(니켈·망간·코발트) 배터리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공장 운영 역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라이텐은 다릅니다.

더 작은 조직, 더 민첩한 의사결정 구조

‘드론·위성’이라는 특화 시장에서 출발한 기술 차별성

보수적인 생산 확대 전략

이 모든 요소가 “노스볼트와는 다른 결말”을 약속할 수 있다는 게 경영진의 설명입니다.


위기의 순간, 누가 준비했는가

이번 사건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단순히 ‘약자가 강자를 삼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노스볼트는 거대한 자본과 정치적 기대 속에서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라이텐은 작은 회사였지만, 위기의 순간에 현금을 쥐고 기다릴 줄 알았고, 남들이 움츠러든 순간 과감하게 베팅했습니다.

결국 이 차이가 운명을 갈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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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희망에서 몰락한 노스볼트, 그리고 그 자리를 꿰찬 라이텐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스케일의 중요성 – 클린테크와 제조업에서 규모는 생존을 결정짓는 요소다.

현금의 힘 – 위기의 순간, 준비된 현금은 최고의 무기다.

기회의 포착 – 시장 전체가 위축될 때, 과감하게 전진한 플레이어가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라이텐이 앞으로 노스볼트의 유산을 성공적으로 부활시킬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배터리 산업의 판도가 다시 쓰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은 스타트업의 대담한 승부수는 어쩌면 ‘두 번째 테슬라’를 향한 또 다른 신호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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