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헌 시
나의 시가
배고픈 당신의 밥그릇 속으로 들어가
며칠이고 당신의 입 속에서
배부르게 씹힐 수 있다면
내 한 편의 시가
외로운 당신에게 달려가
당신의 흔들리는 어깨를
포근히 안아줄 수 있다면
내가 몇 년째 묵은 이야기들을
꺼내보는 시간에도
또다시 어느 사랑은 슬픔으로 번져
한 방울 눈물로 흘러버리겠지만
나의 시가
멀리 있는 당신의 연인에게 달려가
당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내가 그녀를 그리워하듯
당신이 얼마나 그를 그리워하는지
대신 얘기해 줄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시헌 시집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을 그대는 모르고 있다' 중에서